[연말특집 #7] 택배기사님은 미래에서 왔다

이상하지만 따뜻해 #7

by 사우스파크

우리 아파트 택배기사님이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기묘하다.

처음 눈치챈 건 3주 전이었다. 택배를 받는데 기사님이 말했다.

"315호님, 내일 비 오니까 우산 챙기세요."

"네? 일기예보 확인하셨어요?"

"아뇨, 그냥 알아요."

다음날 정말 비가 왔다. 폭우였다. 신기하다 생각했지만 우연이겠거니 했다.

일주일 후, 또 택배를 받았다.

"315호님, 오늘 저녁에 치킨 드실 거면 교촌 말고 bhc 시키세요. 교촌은 배달 1시간 걸릴 겁니다."

"...네?"

정말로 그날 저녁 배가 고파 치킨을 시켰다. 습관적으로 교촌 앱을 열었다가 기사님 말이 생각나서 bhc를 시켰다. 30분 만에 도착했다. 나중에 친구한테 들으니 교촌은 그날 배달기사가 부족해서 주문이 밀렸다고 했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다음 주, 나는 택배를 기다렸다. 초인종이 울렸다.

"315호 택배입니다."

문을 열자마자 물었다.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날씨도, 치킨 배달 시간도?"

기사님은 잠시 망설이더니 주위를 둘러보고 작게 말했다.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나는 기사님을 거실로 안내했다. 기사님은 헬멧을 벗었다. 생각보다 젊었다. 30대 초반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 2025년 사람 아니에요."

"네?"

"2027년에서 왔어요. 타임머신은 아니고, 시간 루프예요. 저는 이미 2025년 12월을 여섯 번 살았어요."

나는 웃었다. "무슨 드라마 시나리오예요?"

"진짜예요. 증명해 드릴까요? 오늘 저녁 7시 32분에 315호 옆집 312호에서 싸움 나요. 부부 싸움. 접시 깨지는 소리 들릴 겁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402호 아저씨 만나실 건데, 그분이 '요즘 날씨 왜 이래'라고 말 걸 거예요."

"...그건 그냥 흔한 일 아니에요?"

"그럼 이건요? 모레 점심에 회사에서 깜짝 회식 있어요. 팀장님이 갑자기 고기 사주신대요. 삼겹살. 강남역 3번 출구 앞 '항아리집'이요."

너무 구체적이었다. "정말이에요?"

"네. 그리고 그 회식 때 소주 3잔만 마세요. 4잔째부터 팀장님이 훈계 시작하세요. 2시간 동안."

그날 저녁 7시 32분, 정말로 옆집에서 싸움이 났다. 접시 깨지는 소리까지 똑같이. 다음날 엘리베이터에서 402호 아저씨가 "요즘 날씨 왜 이래" 했다.

그리고 모레 점심, 팀장님이 갑자기 "오늘 내가 쏜다!" 하시며 강남역 '항아리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소주 3잔만 마셨다. 팀장님은 4잔째부터 인생 훈계를 시작하셨다.

다음 택배 날, 나는 기사님을 붙잡았다.

"정말 미래에서 오신 거예요?"

"네. 근데 이제 슬슬 루프가 끝나가요. 이번이 마지막일 거예요."

"왜 하필 택배기사를 하세요? 미래에서 왔으면 로또라도 사시지."

기사님이 씁쓸하게 웃었다. "처음엔 그랬죠. 로또 사고, 주식 하고. 근데 루프가 반복되니까 돈이 의미 없더라고요. 어차피 리셋되는데. 그래서 이번엔 그냥 평범하게 살아보기로 했어요. 택배 일도 해보고."

"그럼 왜 저한테 미래를 알려주시는 거예요?"

"심심해서요. 그리고 315호님은 매번 택배받을 때 '감사합니다' 하시잖아요. 여섯 번 다. 그게 좋았어요."

가슴이 뭉클했다. "마지막 루프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12월 31일 자정 되면 끝나요. 진짜 2026년으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루프가 계속되거나."

"그럼 조언 하나만 해주세요. 제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

기사님이 진지하게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편의점 가세요. 저녁 8시. 그리고 딸기 샌드위치 사세요. 진열대 세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거. 꼭요."

"그게... 뭐가 달라요?"

"그냥 사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편의점에 갔다. 저녁 8시. 딸기 샌드위치 코너로 갔다. 세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샌드위치를 집으려는데 옆에서 다른 손이 동시에 뻗었다.

"앗, 죄송해요."

여자였다. 예쁘장한 얼굴에 안경을 쓴.

"아니에요, 먼저 가져가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우리는 서로 양보하다가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됐다.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동에 사는 사람이었다. 512호.

"딸기 샌드위치 좋아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아뇨, 사실 처음 사봐요. 택배기사님이 추천해주셔서..."

"택배기사님이요? 우리 동 택배 맡으시는 분?"

"네. 이상한 분이에요. 미래를 아는 것 같아요."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한테도 똑같은 말씀 하셨어요! 크리스마스이브 8시에 여기 와서 딸기 샌드위치 사래요. 세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거."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기사님이... 우리 소개팅 시켜준 거네요?"

"미래에서 온 큐피드?"

결국 우리는 딸기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서 근처 카페에서 함께 먹었다. 이야기가 잘 통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12월 31일 자정, 택배기사님께 문자를 보냈다.

"기사님, 감사했습니다. 루프 잘 탈출하세요."


나는 지금 그녀와 사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택배 받을 때 더 정성스럽게 "감사합니다" 한다. 어쩌면 그 '감사합니다'가 만들어낸 인연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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