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에 남는 문장
31쪽 수리 보고서 작성은 단순히 수리 과정 자료를 취합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실측과 현황조사에도 참여하고 역사적 고증 같은 전문학예사의 영역일 듯한 부분도 스스로 방향을 통해 진행시켜야 했다.
54쪽 서울에 가면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별스럽게 튀지 말고 무난하게 묻어가라고 한 아빠의 말이 떠 올랐다.
56쪽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누구를 속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들렀다 가야 하는 집.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읽은 소감
원저동.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토요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안국동과 원저동 사이를 돌아다니곤 했다. 인사동과 함께 궁들이 많은 곳이면서도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공존하는 곳이라 가면 왠지 정겨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매주 이곳을 돌아다니며 보곤 했다. 궁궐에서 나오는 빨래터를 바라보며 동네 분들에게 ‘지금도 빨래를 하나요?’ 물어보기도 했던 옛 추억이 책을 읽으면서 아련하게 다가왔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전공이 역사교육이다 보니-로 구 조선총독부 해체 작업 보고서를 쓰기 위한 자료 조사와 사진을 찍었었다. 여러 고건축용어를 먼저 알아야 해서 고건축용어사전을 한참 동안 보면서 해체작업에 대한 자료를 만들고, 정리했던 기억때문인지 책 내용이 너무 술술 읽히고 영두의 마음이 내 마음인양 나에게 스며든다.
어릴 적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은 항상 나에게 어색한 곳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충청도 사투리를 그대로 쓰고 있어서 아이들이 억양이 이상하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딱히 튀지 않기 위해서 말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곤 했다. 어색함보다는 주목받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한 친구가 와서 거의 매일 소보루빵을 나누어 주었다. 무심한 듯이 툭 주는 소보루빵은 나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말없이 먹는, 그렇지만 뭔가 연결된 듯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까지도 친구와 만나면 소보루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곤 한다. 1장에서 작가는 영두의 과거와 현재를 옮겨가며 지금하고 있는 일과 창경궁의 추억을 연결해 주고 있다. 당연히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영두가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란 걸 모두에게 알려주듯이 말이다. 특히 옛 추억은 추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현재와 언젠가는 연결되는 하나의 실선과도 같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아련한 추억을 새기며 1장을 읽을 수 있었다. 2장에선 그 추억이 현재에서 나타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게 하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