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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 역사
앞으로의 글쓰기 목표

혼자만의 다짐!!!

by 모도리

어릴 적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에서는 간간히 상장을 받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 상당히 많은 상장을 주었기 때문에 여러 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유독 글쓰기와 한자경시대회에서만 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좀 글을 쓴다고 혼자만의 착각을 했던 듯 하다. 당시 몸이 약하기도 하고, 특히 댕기에 생활한복을 입고 입학식에 참가한 뒤로 졸업할 때까지 서당아이로 불리었던 관계로 학교 도서관 책을 다 읽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도서관이 있는지도 다들 잘 몰랐던 시절이라 책을 빌리려 가려면 당시 담당 선생님 반으로 가서 열쇠를 받아야 했다. 여러 번 가다 보니 담당선생님은 “책보러 도서관 가는 게 너 밖에 없으니 편하게 다녀.” 하시며 열쇠를 주셨다. 그 열쇠가 우리 학교 유일한 도서관 열쇠라는 건 한참 후에 알았는데, 얼마나 도서관에 안가는 시절이었는지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열쇠를 찾아 나에게 온 사람은 없었다. 졸업식날 졸업사진도 찍지 않고 열쇠를 교무실에 반납했던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나를 보면 참 당돌한 아이였다는 걸 이제야 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국어시간만 되면 참 질문을 많이 했다. 국어선생님이 그런 모습을 보며 백일장 대회가 있으면 꼭 알려주셨는데, 올림픽 주 경기장 안에서 하는 백일장에 나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렇게 넓고 오롯이 잘 자란 잔디밭에 앉아 “나의 꿈” 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와, 이런 곳에서 글을 쓰니 생각이 더 잘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제일 먼저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중학교 때도 여러 번 상을 받곤 했다. 그때 읽었던 헤밍웨이나 김동인,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은 나에게 대단한 영감을 주었고, 책 읽는 그날 그날이 참 좋았다.

고등학교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도 1시간 이상 가야 되는 곳이었다. 문고판 책을 읽기에 딱 좋았던 시간과 거리여서 한 권을 책을 챙겨서 오가며 매일 한 권씩 읽곤 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시던 도서부 선생님이 슬그머니 학교문집 만드는데 참여하지 않을래? 하셨을 때 그게 뭔지도 모르고 3년간 문집을 만들었었다. 작품이 나오지 않거나 글이 없으면 이 글 저 글을 써서 채우곤 했는데 사실 그보다는 도서관이 내 집 같아서 좋았다. 1~2학년 때는 다른 동아리도 함께 하고 있어서 회의 시간 빼고는 잘 참여하지 못했지만 3학년 때는 동떠러진 도서관은 나에게는 힐링 그 자체였다. 특히 토요일이면 종로서적, 교보문고, 덕수궁 등 종로 바닥을 돌아다니며 책도 읽고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습작을 하곤 했다. 어쩌면 하찮은 소설가 지망생이 정말 말도 않되는 글을 쓴다고 다른 사람들의 생활모습, 대화모습 심지어 그들에게 다가가 사는 이야기를 들으려 했으니 교복입은 깡마른 아이의 물음에 지나치지 못해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해 주셨으리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할 나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인생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던 시기였으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은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나는 편집하고 재단한 나만의 시집을 인쇄소에 맡겨 20여 권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찌보면 그게 나의 첫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첫 작품이다. 제목도 낯 뜨거운 [삶, 번민 & 스케치]였던걸 보면 말이다. 지금 읽으면 다시 펴는데 한참이 걸린 정도로 손말이 오그라든다.

나의첫시집.jpg 혼자 만들어 놓고 너무 너무 좋아했던 어째든 첫 책

1년간 공무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의 교육철학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이제부터 네가 벌어서 학교도 가야 된다.” 라고 말씀하시더니만-그래서 중고등학교는 장학금을 받았다.-정말 대학에 붙었는데 등록금을 주지 않으셨다. 그래도 중고등학교때도 등록금 빼고는 용돈이나 차비는 풍족하게 주셨었는데 설마 안주시는지 않겠지. 했는데 정말로 주지 않으셨다. 후에 그 이유가 합격한 대학과 학과가 우리 집에서 원하는 게 아니라 주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말이다. 참고로 우리 집안은 대부분 건축과를 나오거나 건축관련 일을 하는데 나만 국문과니 문예창작과를 간다고 했으니 등록금 안주고 1년 재수하다보면 갈거라 생각하신 듯 하다. 그런데 내가 덜컥 공무원 시험-당시엔 지원자가 적었다-보고 돈 벌어서 알아서 간다고 했으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그렇게 1년간 공무원생활을 하며 번 돈으로 내가 원하는 학과를 선택해서 입학했다. 그리고 신문사 기자로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도 하며 대학생활을 정말 나에게는 재미있게 보냈다. 그리고 나서 그 재미에 빠져 대학원까지 가버렸다.

첫 공저..다만 ISBN은 없다.

교사가 되어서는 무던히도 아이들과 글을 썼던 것 같다. 학위논문을 계속 써야 했던 시절이라 아이들에게도 동시짓기와 함께 1년간 연구한 걸 논문으로 제출하도록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때 아이들이 제출한 논문을 책으로 엮어서 가지고 있는데 읽다보면 참...아이들에게 너무 학술적으로만 접근하도록 했다는 게 고스란히 보인다. 뭐..동시도 쓰게 했어요.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매년 아이들과 문집을 만들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한 두권 빼고는 다 어디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선생님들과 교육관련 책을 쓰기도 하고, 나만의 교육관련 책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한 내용을 문집이외에 독립출판사를 통해 만들어 보기도 했다. 몇 권의 책을 쓰고, 지금도 몇 권의 책을 쓰고 있다. 그런데 점점 내 직업과 관련된 어쩌면 내가 쓰고자 했던 글들이 아닌 글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담은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했던 나. 이제는 그런 글을 한번 써 보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고, 배시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첫 단독 저서^^
아이들이랑 많든 수많은 학급문집 중 하나..그런데 다 어디갔지?!!!


아이들과함께만든책_1.jpg 아이들의 작품을 책으로 출판^^
아이들과함께만든책_2.jpg 아이들의 작품을 책으로 출판^^
요즘쓴책.jpg 근래의 공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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