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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4장

by 모도리
P20220812_154227768_84669ED8-CA44-4501-9D3F-D1F32AD889BC.JPG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그대로이다.

읽은 쪽 : 4장 타오르는 소용돌이(185~224쪽)

4장의 키워드 : 억울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인생이고, 이제 추억이 된다.

- 4장에 대한 에필로그

옛 추억은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어쩔 때는 잊고 싶은 추억도 언제부터인가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나에게 남아 있다. 다만 기억하기 싫은 것들이 더 오래 추억에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4장은 영두의 아픔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극복한 영두도 그 안에 있다.


- 기억에 남는 문장

192쪽 만나고 싶었다. 낙원하숙 시절 얘기도 하고 기억 속 일들을 울지 않고 웃으며, 공유하는 추억을 펼쳐 남들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이제 내가 그 일을 웃으며 이야기하네,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덤덤해하고 싶었다.

196쪽 그러면 우리는 떨어졌다가도 소리의 파장으로 다시 이어지는 셈이었다.

224쪽 “다 해결되었어요.”


읽은 소감

영두 나이 때 우리 학교는 경찰들이 들어와서 선생님들을 잡아가던 때였다. 수업중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수갑을 채워 잡아 가곤 했다. 옆 고등학교에서는 항의한다며 학생이 창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어수선한 시국이었고, 그 모습을 보는 나에게 학교는 집보다, 거리보다 더 아수라장이고 무서운 곳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어려운 존재였는데 경찰에게는 마냥 쉬운 존재였고, 학생들에게는 범법자를 잡아가는 일이니 너희들도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일장 훈계를 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영두는 그 부당함에 강화로 돌아가 버렸지만 난 반대로 교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교에 교사나 학생을 해코지 하려 오는 사람들이 없게 만들고 싶었다.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할 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안이 어려웠던 나는 원하던 일반계 고등학교에 갈 수 없었다. 약간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포기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덕수상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동숭동 대학로나 창경궁, 덕수궁, 종로서점, 프랑스 등 다른나라 문화원을 돌아다녔다. 누구랑 말하기도 싫었고, 그저 조용한 곳이 아니면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했던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대학로가 좋았다. 그때부터 연극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없는 용돈을 모아 장미꽃을 사고, 주인공이 아닌 단역의 배우에게 그 꽃을 전달하면서 연극배우들에게 지금 난 꿈이 좌절된 게 아니고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했기에 교사가 되면 더 잘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겨우 그 아픔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이 되어 대학 입학금를 모았다. 운이 좋았던 나는 항상 모든 시험을 보면 합격를 해 버렸다. 대학입학시험도 한번에 붙어버렸고, 부모님은 장학생으로 들어갔으니 뭐라 말씀하시기 보다는 격려해 주셨다. 분명 그때까지도 집안 사정은 그리 좋았던 건 아니였는데도 말이다. 자식이 너무 하고 싶어하니 말리지 못하셨으리라. 다만 나 또한 어느 정도 물러나 사범대학을 간 것만 빼고는 말이다. 영두를 보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꿈과 삶은 무기력해지고 포기해지던 때가 있더라도 다시 일어나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만약 영두가 옆에 있었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내가 할 수 만 있다면 해결된게 맞아.”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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