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의 제목 쿠마 센세이가 처음엔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배운 일본어교과서의 기억을 더듬어 센세이가 선생이라는 뜻이라는 게 생각났다. 그리고 쿠마는 곰이라는 뜻도 찾아냈다. 사람이 아니라 쿠마 센세이는 곰선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왠지 5장에서는 인물들의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내 주지 않을까 한다.
241쪽 이름들을 안다는 건 서류가 말해주지 않는 역사를 채워넣을 수 있는 것이구나 싶었다.
252쪽 누구에게나 있는 시절이고 모두가 겪고 지났을 시간인데 왜 아이들을 보면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253쪽 “누구겠어요. 오태양 걔는 만날 그러니까 포기해야 해.”
“좀 슬픈 말이다. 사람을 포기한다는 말.”
267쪽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 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269쪽 이해하면 미움만은 피할 수 있었다. 때론 슬픔도 농담으로 슬쩍 퉁치고 넘어갈 수 있었다.
278쪽 그 겨울 교실 창밖으로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 나는 조용히 다가오는 빛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머니가 다가오는 이유를 나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를 구해주고 싶어한다는 걸. 텅 빈 내 눈 안으로 들어와 정신을 차갑게 깨우는 사랑이라는 걸.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사람을 믿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증조할머니까지 4대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항상 농사 일로 바쁘셔서 집에는 증조할머니와 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때면 옛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 대부분이 구한말 이야기였다. 증조할머니에게는 구한말이 10대~20대였으니 당연히 기억에 많이 남으셨으리라. 그때 시집을 오시면서 가져 온 한글소설집과 한문체로 된 책들을 읽어주시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1880년부터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알게 되었고, 굉장히 오래된 옛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집안 분위기이다보니 역사라는 교과가 자연스럽게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거의 역사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수많은 질문을 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이 구한말 한글 소설과 조선시대 문중 문집을 다 읽고 그것도 부족해서 대학교수들의 글까지 읽었으니 선생님의 수업은 궁금증을 풀어내는 시간이 되었었다. 특히 여름방학때 선생님과 함께 간 신안해저유물이 전시된 목포해양박물관에서의 하루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역사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상을 받아서 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유물들과 신안에서 인양된 배를 보면서 나에겐 조선시대 이전의 세계에까지 빠져들게 했으니 말이다.
이름이나 작은 정보를 안다는 것이 역사를 어떻게 채워주는지 알고 있어서 인지 5장을 읽으면서 자꾸 그 전에 읽었던 내용과 비교하면서 탐정처럼 김금희 작가의 인물도를 그려보게 된다.
강영두를 중심으로 금성무로 보이는 첫 사랑 순신, 가장 친한 친구 은혜, 은혜의 딸 산아와 벌새라는 별명이 붙은 산아의 친구 스미, 낙원하숙에서 만난 안문자할머니(시미즈 마리코), 같은 방은 쓴 리사, 건축사무소 소장인 안나, 여기까지는 정리가 쉽게 되었는데 기노시타 코주부터 왠지 안문자할머니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수많은 편지가 그걸 말해준다. 기노시타 코주의 이야기가 계속 나왔던 이유도 그래서 인 듯 하다. 기노시타 코주는 박목주라는 인물로 일본 원예 유학한 디 돌아와 식물원 주임이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딸 시미즈 마리코(박진리)와, 아들 유마(바유진)가 있다. 안문자할머니는 박진리가 죽은 후 그녀의 호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창경궁이 있는 낙원하숙에서 살았던 듯 싶다. 이제야 그 실마리가 풀린다.
실마리가 풀리고 나니 많은 문장 중에서도 아이들을 보면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문장과 포기해야 한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 처음 교사가 된다고 할 때 나를 아는 친구들은 “너는 교사되면 아이들이 힘들어 할걸” 하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긴 대학 때 워낙 냉정하고 냉철했던 내 모습을 보면 아이들에게도 팩트폭력을 할 게 당연해 보였을 것이리라. 사실 몇 년동안 아이들에게 웃는 모습보다는 아이들에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게 하려고 노력하고 아이들을 닦달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서 조금씩 웃음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긍정적인게 얼마나 좋은지 배워나가면서 지금은 매년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배워가고 있는 가르치면서 배우는 교사가 되어 있다. 아이들이랑 있는 게 그래서 더 좋아지는지도 모르겠다.
안문자할머니가 찾아오는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믿을 힘이 없었던 영두는 아마도 그래서 할머니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할머니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모습들이 하나 둘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서 우연인 듯 우연아닌 필연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