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에서는 문자할머니의 깊고 깊은 이야기가 쭉 풀어내진다. 그러면서 리사와의 악연도 인연으로 변하고, 낙원하숙에서의 생활이 아련한 추억에서 깊이 있는 추억으로 살그머니 영두의 인생에 아로 새겨진다. 그 와중에 산아 또한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은 인생을 마무리하고, 아직 창창한 아이는 인생을 계획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정리할 건 정리하고 다시 시작할 건 다시 시작한다.
370쪽 나도 동의했다. 시미즈 마리코라는 도장은 할머니가 내린 승인, 승낙, 기꺼움, 확인의 표지였다.
383쪽 그리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하려다 지우고 마마무 흰죽지수리의 사진을 첨부했다. 어쩌면 나를 대온실로 이끌어 인생을 수리할 기회를 준 것도 마마무였으니까.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주위를 정리하는 걸 먼저할까? 아니면 나만 알고 있는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낼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 좌절하고 침울해만 있을까? 문자할머니, 마리코는 이 모든 걸 한번에 해내었다. 나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그럴 수 있을까? 차분하게 모든 걸 준비하고 누군가에게 나의 언젠가는 전달될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물음표가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점점 미궁에 빠진다. 책의 내용이 아닌 마르코의 삶에서 나의 삶이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온실수리보고서는 대온실이라는 테두리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두가 같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 삶들을 모아서 대온실만 수리한 게 아니라 우리네 삶도 함께 수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수리를 하지 않은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의 삶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3월엔 춘당지라도 한번 돌아보며, 상상의 스케이팅이라도 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