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인프제 - 혼자만의 오해

by 엘리젤리

한 달 전엔 청귤청을 담았다. 나란 사람은 가성비 따지는 걸 좋아하는 지라 웬만해선 사 먹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중 하나가 청인데 딸기청, 레몬청, 토마토청 그리고 처음으로 청귤청을 담았다.

청귤청을 만들면서 나는 많이 신나 있었다.

‘이걸 만들어서 누굴 줄까?‘

앞집언니도 주고 옆집 신혼부부도 주고 내가 좋아하는 언니들도 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도 주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하지만 800그람 밖에 안 되는 청귤로 청을 만드니 양이 매우 적었다. 나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주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양이 적으니 줄 사람을 추려야 했다. 나는 못 먹어도 우리 애들이 먹을 양은 남겨놔야 했기에 친한 언니 3명으로 간신히 추렸다.

그리고 정성스럽고 이쁘게 사진 찍어 단체 카톡을 보냈다.


나 - 나 청귤청 담았어. 먹을 사람?

언니 1 - 좋아! 나주라

언니 2 - 남으면 나도 줘.

나 - 알겠어. 그런데 한 두 번 먹을 양 밖에 안돼. 아무튼 갔다 줄게!

언니 1 - 괜찮아 주는 게 어디야 ^^


그런데 이상하다 언니 3이 대답을 안 한다. 읽은 건 확실한데 왜 말이 없지.

나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무슨 바쁜 일이 있나?’

‘청귤청을 별로 안 좋아하나?’

‘언니 3이 나한테 서운한 게 있나?’

‘언니 3이 나한테 서운한 게 있나?’

‘언니 3이 나한테 서운한 게 있나?’


“카톡” 소리만 나도 언니 3인가 확인하게 되었고 왜 답이 없는지 계속 고민에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런데 고민이란 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들이기에 특단의 조치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로 청귤을 1.5킬로 샀고 그다음 날 바로 청귤청을 담았다. 이번에는 꼭 언니 3한테 주리다 마음먹고.

이번에는 디저트 컵에 듬뿍 담았다. 그리고 바로 언니 3한테만 카톡을 보냈다.


나 - 언니 청귤청 애들이 잘 먹어서 또 담았어 언니 먹을래?

언니 3 - 고마운데 괜찮아 조금밖에 안 나오는데 마음만 받을 게 고마워^^


응? 이게 아닌데… 이거 언니 주려고 담은 건데…라고 차마 말을 못 한 나…


나 - 알겠어^^


고민을 잘라버리려고 특단의 조치를 취했건만 고민에 고민을 더 하게 됐다.


‘그게 뭐지? 내가 무슨 말 실수 했나?’

‘분명 나한테 서운한 게 있어!’

‘분명 나한테 서운한 게 있어!’

‘분명 나한테 서운한 게 있어!’


나는 카톡 대화를 찬찬히 훑어봤지만 서운한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나 혼자 망상에 빠져 몇 날 며칠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단체 카톡이 왔다.


언니 3 - 이번주 금요일 저녁때 뭐 해?

언니 2 - 뭐 없어. 우리 새로 생긴 곳 갈까?

언니 1 - 그래. 신난다!

나 - 좋아! 좋아!


드디어 언니 3의 반응을 볼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짐짓 괜찮은 척했지만 나 혼자 이리 궁리 저리 궁리 했던 몇 날 며칠.

우리 넷은 같은 단지에 살고 있었기에 만나서 가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먼저 단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저만치에서 언니 3이 걸어오고 있었다.


“6시 인데도 해가 길다”

“응, 더워 더워”

“언제 여름이 끝나려나 “

“며칠 전에 우리 집 앞에서 뱀 나왔대”

“아 진짜! 대박“


우리 둘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는 동안 언니들이 하나 둘 오고 맥주집을 가면서도 우리는 평소처럼 소소한 근황을 전하며 수다를 떨었다.

처음엔 눈동자를 굴려가며 이리저리 언니들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언니 3이 평사시처럼 편안하게 나를 대했고 다른 언니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무거웠던 내 마음도 가벼워지고 갈피를 못 잡던 내 눈동자도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똑같이 리액션 잘하는 나로 돌아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언니 3이 나한테 서운해서가 아니라 정말 나를 잘 알았기에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든 빵과 그래놀라 그리고 아이들 간식, 작고 볼품없는 것까지 같이 나누는 걸 좋아하는 나.

여행 가서 작은 것이라도 꼭 선물을 사 오는 나를 잘 알아서 진짜 마음만 받겠다고 한건 아닐까?

언니에 대한 오해를 나 혼자 스스로 만들고 또 혼자 푸는 인프제의 삶은 정말 피곤하기 짝이 없다.


인프제인 나는 고민에 이렇다.

- 나의 기대와 결과가 달랐을 때 혼자 깊은 고민에 빠진다.

- 고민은 보통 좋은 쪽보단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

- 죄책감을 벗어버리기 위해 혼자 해결책을 찾는다.

- 쿨한 척 하지만 사실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 오해가 풀렸을 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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