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그 사이 취미

인프제의 넓고 얕은 취미들

by 엘리젤리

오랜만에 소금빵을 구우려고 버터를 사다 놨는데 영 손이 가지 않는다.

또 나의 베이킹 열정이 식어버렸나 보다. 한동안 베이킹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옆에서 들 이러다 빵집 차리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니…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안 한다.

베이킹에 빠져 조그마한 광파오븐을 세 번 네 번 돌려가며 빵부터 머핀, 쿠키, 마들렌까지 엄청 구웠다.

그러다 남편이 큰 맘먹고 스메그 오븐을 사줬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광파오븐으로 2~3번 돌릴 만큼의 양을 단 한 번에 구울 수 있다니!

진짜 베이킹할 맛이 났다. 그래서 지인들에게도 빵을 엄청 만들어줬다.

식빵부터 호두타르트, 휘낭시에, 레몬케이크, 그래놀라, 스콘, 단팥빵, 소시지빵, 치아바타 그리고 소금빵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줘 내 주변 지인들은 얻어먹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옆에서 들 웬만한 빵집보다 맛있다며 칭찬을 해줘서 (물론 진짜 엄청 맛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알지만) 진지하게 디저트 가게를 차릴까 생각도 잠시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죽기부터 돌렸을 정도다. 발효하는 사이에 등교시키고, 등원시키고 또 2차 발효할 때 픽업하고 하원시키고 학원 보내고 그 발효하는 1시간 사이사이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정말 빵을 만들면서 정신은 안드로메다에 가있었지만 재미있었다.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주변 지인들을 보면 또 만들고 싶고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사워종도 만들었다. 아침저녁으로 밀가루 먹이를 주며 천연 이스트를 키우는 건데 뽀글뽀글 기포가 나며 부풀어 오르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사워종으로 만든 빵이 내 입엔 너무 시큼하고 관리하는 게 어려워 세 번 만든 후 포기했지만.

그때의 아침은 늘 빵이었다. 베이커리에서 1개 사 먹을 돈이면 5개도 넘게 만들 수 있었으니 베이커리에는 당연히 안 갔다. 하지만 버터값은 무시 못하겠더라. 그래도 우리 아이 먹일 거라고 이즈니 또는 엘르 앤 비르 버터를 샀다. 한여름엔 생크림을 사러 여러 군데 마트를 떠돈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열정은 어디로 간 걸까? 일일 일 베이킹을 했던 내가 벌써 한 달이 넘게 빵을 안 만들고 있다.

내가 그렇다. 하나에 꽂히면 엄청 열심히 하다가 금방 열정이 식어버린다. 그런 게 베이킹뿐이겠냐만은…

나는 식물을 기르는 스케일도 남다르다. 다른 집처럼 5개? 10개? 20개? 아니다 우리 집에는 100개가 넘는 식물이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실내에는 몬스테라, 고무나무, 페페, 여인초, 셀렘, 박쥐란 그리고 제라늄등 열대식물들이 주로 있고

옥상에는 블루베리, 아카시아, 장미, 라벤더, 로즈메리, 서향동백, 유칼립투스, 올리브나무 그리고 상추나 쑥갓, 고추 등 쌈채소등을 키우고 있다.

조그마한 야외정원에는 8종류의 장미들과 유칼립투스, 로즈메리, 라벤더, 애니시다, 수국, 목란, 목단, 앵두나무 그리고 구근류 등을 키운다.

옥상에서부터 거실, 부엌 그리고 정원까지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단번에 안다. 이 집 엄마는 식물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지금도 식물을 좋아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은 비수기다. 나의 식물 성수기는 초 봄에서 초 여름까지다. 그리고 가을 선선해질 때 잠시 찾아온다.

초봄에는 열정이 대단하다. 매일 정원에 나와 분 갈하고 잡초 뽑고 비료 주고 물 주고 꽃집에 가서 꽃사고 인터넷으로도 사고 화원 가서 또 사고 씨앗 파종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 열정이면 화원도 차릴 기세다. 앞집, 옆집, 옆옆집에선 열심히인 나를 보며 말한다.


“이쪽 일 하셨어요?”

“혹시 전공자세요?”

”진짜 부지런하고 대단하세요 “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식물과 나는 서로에게 잘 맞는 듯하다.

식물은 불필요한 수다나 립서비스, 가식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건 최소한의 양분이다. 내가 그것을 제공해 줌으로써 그들은 나에게 새순과 꽃, 그리고 열매로 나에게 더 큰 행복을 선물한다. 그것이 나는 고맙다.

우린 시끄럽지 않지만 꾸준히 대화하며 소통한다.


잎이 처지면 “목말라요”

노란 잎이 보이면 “영양분이 부족해요” 혹은 “물이 너무 많아요”

화분밖으로 나온 뿌리가 보이면 “집이 좁아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양해 정답은 없지만 식물이 보내주는 신호만 잘 관찰해도 식물킬러는 면할 수 있다.

식물에 진심이었던 내가 지금 비수기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날씨가 더워지면서 온갖 벌레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이다.

진짜 온갖 벌레들을 다 만났다. 총채벌레, 진딧물, 깍지벌레, 송충이 거기다 나를 괴롭히는 모기까지. 그래서 약간의 번아웃이 왔었는데 본격적으로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니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나갔다 와도 땀으로 샤워를 하게 되니 너무 힘들더라. 거기다 계속되는 비에 식물들은 병치레를 하기 시작했고 극심한 더위에 식물과 나는 지쳐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간간히 물만 주면서 긴 여름을 버티고 있다. 다시 선선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럼 또 나는 바빠지겠지. 가지치기와 분갈이를 하고 겨울울 잘 버티기 위해 비료도 듬뿍 주고 더 선선해지면 구근도 심어서 내년 봄에 가득한 튤립이랑 수선화 무스카리를 봐야겠다.

빅씨스 유튜브

또 다른 나의 얕은 취미라면 운동이라 하겠다.

사실 일주일 정도 쉬고 있어서 좀 찔리지만 이래 봬도 홈트 4년 차다. 워낙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인프제라 그런지 센터에 가서 운동하는 것보단 편하게 혼자서 홈트 하는 게 좋다.

유튜브 채널 땅끄부부로 시작해서 지금은 빅씨스 언니에게 올인했다. 빅씨스언니의 비키니 프로그램부터 100일 프로그램도 완주했다.

처음에는 10분도 헉헉거리며 힘들었는데 10분이 20분이 되고 20분이 30분, 그리고 어느새 1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도 가능하다. 그뿐이겠는가 맨몸 운동으로 시작해 덤벨 1킬로에서 3킬로 5킬로로 차쯤 늘려나가 지금은 덤벨 8킬로를 양손에 들고 스쾃도 가능하다.

다들 궁금해하는 체중에선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건 사실이다. 원래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 아니고 저녁때마다 마시는 맥주를 못 끊어… 만년 유지어터이다.

그래도 마음먹고 1주일 정도 관리하면 미세하게 근육이 보인다. 마음을 먹는 게 무척 힘든 일이다. 점심때도 간단하게 셰이크를 먹는데 저녁까지 간단하게 먹기엔 억울하달까. 유지어터인 게 어디냐고 먹을 땐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비록 그다음 날 후회할지언정.

무엇보다 운동의 큰 장점은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아닌가. 그 힘든 운동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1시간 동안 운동한 나를 셀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체력과 지구력이 좋아지는 건 덤이다. 그 밖에도 운동의 장점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1년 차에는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두 시간 넘게도 했다. 안 하면 불안하고 조급해졌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운동중독이란 걸 실감했다. 낮에 운동을 못하면 애들을 재우고 나서 밤에 운동을 하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공원도 돌았다. 저탄고지 식단까지 해서 그런지 그때 나의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44킬로! 이대로 쭉 유지하리다 다짐했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나의 최저 몸무게와 운동강박이 사라졌다. 이삿짐 정리로 하루 이틀 못하다가 운동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몇 달 운동을 안 하고 지내다 어느 순간 내 몸이 둔해진 걸 느꼈다. 뱃살은 물론 허벅지, 팔뚝살이 출렁거리더라. 인지했을 때는 이미 4-5킬로 쪄있는 상태였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 가있을 때 빅씨스언니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운동강박증은 없었다. 운동은 나에게 성취감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수단이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번 놓고 나니 이제야 들었다. 이제는 짬짬이 주 5일 시간이 날 때 짧게는 30분 많게는 1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오전 약속이 있거나 아이가 아파 학교에 못 갈 때는 쿨하게 쉰다. 아이들 방학 때는 아무래도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땐 그냥 운동을 쉬는 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또 3킬로 정도 불어나 있다. 그래도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다시 운동을 열심히 하면 3킬로가 금방 빠지니깐.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빠진다. 물론 식단에 금주까지 하면 예전처럼 44킬로로 돌아가겠지만 못 먹는 스트레스는 받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빵, 곱창, 떡볶이 그리고 맥주등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지금 몸무게에 만족하고 있다. 어차피 운동은 평생 하는 건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할 때 조용히 나 혼자서 하는 운동은 나에게 힐링 그 자체다.


인프제인 나는 취미에 이렇다.

- 혼자 하는 취미생활을 선호한다.

- 한번 꽂히면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 그 열정이 오래가진 않는다.

- 번아웃이 오면 모든 걸 내려놓는다.

- 한번 올라갔다 내려와야 그 취미를 간간히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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