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자마자 자고 싶다.

인프제의 잠 못 이루는 밤

by 엘리젤리

나는 보통 빠르면 9시 30분 늦어도 10시에 아이들과 같이 불을 끄고 눕는다.

이렇게 말하면 열이면 열 “너 진짜 잠을 일찍 잔다”라고 생각한다. 나랑 같이 10년 넘게 산 남편도 내가 잠을 많이 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프제들은 알 것이다. 눕는다고 바로 잠을 들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특별히 우울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낮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운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이 많다. 고민도 많다. 공상도 많고 계획도 많다. 이러한 모든 것이 불을 끄고 누우면 더 또렷해진다.

낮에 바빠 정신이 없어서 미처 못 챙긴 생각들과 고민들 또는 걱정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하나씩 되새김질하게 된다.


보통은 아이에게 쌀쌀맞게 대한 나를 반성하고 후회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화를 한번 참을걸 그랬어 ‘

‘조금 부드럽게 말할걸’

‘매섭게 쳐다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무 미안한 감정에 갑자기 양쪽에서 자고 있는 내 딸들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고백한다. 엄마가 내일은 진짜 잘해줄 거라고 약속하면서.


또 약간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바보같이 가만히 있었던 소심한 나를 자책하기도 한다. 그 장면을 시뮬레이션하면서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사이다 같은 말들을 해보기도 한다.


“야! 너 지금 뭐라고 말했어? “

“아줌마! 여기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

“아저씨! 여기다 침 뱉지 마세요!”

“이봐요! 운전 똑바로 해요!”


또 이미 예전에 지나간 일들이 갑자기 떠올라 그때 그렇게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는 무슨 그렇게 억울한 일이 많았던지…


누군가 그랬다. 걱정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도 일어나지 않는 일의 90%를 걱정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걱정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큰애가 콧물이 나는데 내일 열나면 어떡하나 걱정.

작은애의 교정은 언제 시작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걱정.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을 더 읽게 할지에 대한 걱정.

영어노출을 좀 더 많이 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나서 걱정.

사고 싶은 게 있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걱정.

명절에 시댁에서 자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

집을 정리해야 하는데 시간이 안 나서 걱정.

살이 많이 쪄버려서 걱정.


눕기만 하면 정말 하찮은 걱정부터 아직 먼 이야기까지 걱정투성이다. 좀 쿨하게 빨리 잠들고 싶다.




브런치 작가 신청 전까지는 브런치 작가 소개와 브런치 활동계획에 대한 생각에 잠 못 이루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 잠이 들기 전까지 내리 그 생각만 한 것 같다. 한 번 떨어졌을 때는 그래 누구나 한 번은 떨어지겠지 하고 약간? 쿨하게 넘겼는데 두 번째 떨어졌을 때는 좀 심각해져서 하루 종일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누워서 눈을 감고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드디어 세 번째에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을 때는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잠 못 이뤘다. 그리고 어떤 주제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한 의욕에 잠을 계속 설쳤다.

요즘은 글을 계속 써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과 다음 주제에 대한 생각, 인프제의 내용으로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에 잠 못 이룬다.




나는 계획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프제인지라 내일 할 일도 잠잘 때 누워서 정리한다. 그래봤자 대단한 스케줄은 아니지만.

내일 아이들이 가는 학원과 끝나는 시간, 내일 만들 반찬이나 저녁거리, 내일은 꼭 도서관에 갈 것, 내일 오전에 꼭 운동할 것.

또는 주말에 무엇을 할지도 계획한다. 주말에 집에 있을지 쇼핑몰을 갈지 아니면 어디 공원을 갈지.

더 나아가서는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지도 정해둔다.


‘저번에 부산을 갔고 1월에 발리를 가니깐 중간에 전주나 대전을 가볼까 ‘

‘다음 해외여행은 어디가 좋을까? 하와이도 가고 싶고 호주도 가고 싶고 이번기회에 유럽을 가볼까?’

‘내년 여름방학 때 제주 한 달 살기 다시 해볼까?’

‘아니야, 여름방학 때 동남아 2주 살기를 해볼까?’


어차피 상상은 자유 아닌가. 상상으론 이민도 가능하다. 저번에는 자려고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해외에서 1년 살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1년보다는 2년이 나을 거 같고 그 보단 아예 아이들을 위해 이민은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갔다. 목적지도 정했다. 호주나 캐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도서관에서 호주와 캐나다 이민에 관련된 책을 빌려와서 보기 시작했고 나의 뜬금없는 행동에 남편이 어이없어했다. 나는 정말 진지해서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남편은 현실적으로 이민은 당장은 힘들다고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한 달 살기 해보자는 말에 동의하며 더 이상 이민 얘기는 하지 않았다.


누워서 뜬구름 잡는 상상을 많이 하지만 나의 모든 계획은 한밤중에 이루어진다. 제주 한 달 살기도 그랬고 이번겨울에 가는 발리 2주 살기도 누워서 어디로 여행 갈까 생각하다 발리로 정했고 4박 5일 여행으로 시작되었다가 좀 오래가고 싶은 생각에 내가 남편에게 제안한 거다. 또 지금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도 누워서 오만가지 상상을 하다가 한번 타운하우스에서 살아볼까? 하며 시작된 거다. 사실 브런치의 시작도 그렇다. 나도 한번 인프제의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다음날 남편에게 말했더니 “브런치 스토리”란 곳이 있다며 알려주었기에 이렇게 시작하게 된 거다. 그러니 나의 공상이 하주 허황된 건 아닌가 보다.




회사 다닐 때는 불면증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일부러 술을 마시고 잔적도 많다. 직업 특성상 야근이 많아 밤 12시 넘어 퇴근한 적이 많았는데 빨리 자고 싶은 생각과 달리 직장생활에 대한 걱정과 프로젝트, 그리고 미운 상사에 대한 생각으로 어슴푸레 해가 뜰 때쯤 간신히 잠을 든 적이 많았다. 그러다 진짜 빨리 자고 싶어 좋아하지 않는 소주를 3잔 정도 마시고 술기운에 빠르게 잠들었다. 그렇게 며칠 했더니 이제 술 없이는 못 자겠더라. 그때의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이 “그게 알코올중독의 시초야”라는 말에 그만두긴 했다. 10년이 넘은 지금은 맥주 2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나에게 불면증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첫째를 낳은 순간부터 둘째가 3살 정도 될 무렵까지. 그때는 내가 불면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모유수유를 했던 나는 2시간마다 혹은 1시간마다 젖을 물렸다. 한밤중에도 예외는 없었으니 꾸벅꾸벅 졸면서 수유를 하기도 했다. 거기다 첫째가 예민해서 4살까지는 꼭 밤에 한두 번씩 깨서 울어댔다. 어르고 달래느라 잠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때의 소원은 “8시간 통잠 자는 것”이었다. 제발 한 번도 안 깨고 꿈도 안 꾸고 푹 8시간 쭈욱 자는 게 소원이었다.

둘째가 3살이 될 때까지 아가들의 끝없는 에너지에 기가 빨려 낮에도 밤에도 만성피로에 시달려 눕자마자 혹은 아이들보다 먼저 잠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조금 커 어린이집을 다니며 나아지기는 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 불면증이 생겼지만.




비록 잠이 들려면 2~3시간 혹은 더 많이 걸리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좋아하긴 한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니깐. 나를 되돌아보고 하루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그려보고 또 더 나아간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다. 머리만 대면 3초 만에 잠들어버리는 남편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남편은 모를 거다. 이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시간인지.

눈을 감으면 또 하나의 우주가 펼쳐진다. 오늘밤엔 또 어떤 우주가 펼쳐질까?


인프제인 나는 잠에 이렇다.

- 잠을 자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 잠을 자려 누우면 더 또렷해진다.

- 무수한 생각과 고민과 공상에 잠을 못 이룬다.

- 생각이 생각을 불러와 더 잠을 못 이룬다.

- 생각하다 잠들고, 잠들려다 깨고 또 생각하다 잠들고 반복한다.

- 365일 중 360일 꿈을 꾼다.

- 누워서 생각하는 시간이 싫진 않다.

- 10분 안에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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