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써볼까요?

시 쓰기

by 노에마


어떤 글은 정해진 형식 속에서 흐름을 따라 써야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시는 그렇지 않다. 시는 틀을 벗어나도 되고, 문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한 줄로도 충분하고, 때로는 한 단어만으로도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원태연 시인의 ‘그리움’처럼 말이다.


"손톱

머리카락

아니면

도마뱀 꼬리와 같은 것"



이 짧은 문장 하나로도 그리움의 정체를 묘하게 포착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시를 읽고 있으면 늘 감탄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글로 이런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시인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단어를 깎고 다듬어야만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는 어렵게만 생각하면 멀어지고, 쉽게 바라보면 한없이 가까워진다. 시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자유로운 언어다. 아이들이 본 것을 그대로 적은 글, 할머니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 내려간 손편지조차도 시가 된다. 마음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시는 마치 시골밥상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것이 더 깊은 맛을 낸다. 시는 감정을 가공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꺼내 놓는 일이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시가 완성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힘들 때 일기처럼 시를 쓰고, 어떤 사람은 벅찬 감정을 눌러 담기 위해 시를 쓴다. 시를 쓰는 동안에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시를 읽으면, 그때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다. "아, 그때 나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시는 나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식이자, 나를 치유하는 힘이 된다.

시를 쓰려면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꼭 조용한 서재나 카페일 필요는 없다. 버스 정류장에서도, 공원 벤치에서도, 심지어 냄비 속 라면이 끓는 동안에도 시는 태어난다.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쉼터가 필요하다. 시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한 걸음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는 순간에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근사한 책상이나 멋진 노트가 없더라도 괜찮다. 생각나는 단어 하나를 핸드폰 메모장에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처음 쓰는 시, 부끄럽지만 버리지 말기”


처음 쓰는 시는 왠지 어색하고 민망하다. 너무 유치한 것 같고, 어설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가 나중에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른다. 첫 시를 부끄럽다고 버리는 건, 갓 싹튼 새싹을 뽑아버리는 것과 같다. 오래 지나서 다시 보면, 그 시는 또 다른 감동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시는 다듬을수록 더 빛이 난다. 처음에는 엉성해 보여도 몇 번 다시 읽고 손을 보면 더 좋아진다. 그러니 첫 시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천천히 다듬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 시가 나중에 "이때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지도 모른다.

시를 쓰는 데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거창한 도구도 필요 없다. 연필 한 자루면 되고, 스마트폰 메모장도 괜찮다. 심지어 머릿속에 떠오른 한 줄의 문장을 그냥 되뇌어도 시가 된다. 하지만 막상 시를 쓰려고 하면 손이 멈칫거린다. "이게 시가 될까?", "너무 짧은데?", "이걸 시라고 해도 되나?" 같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시는 길이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한 줄이어도 되고, 열 줄이 넘어도 된다. 꼭 완성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노랗다." 이 한 줄도 충분하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느냐고? 사실 아무 의미가 없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는 누군가는 상상할 것이다. 노란 은행잎이 가득한 거리를 떠올릴 수도 있고, 식탁 위에 놓인 달걀 프라이를 떠올릴 수도 있다. 시는 그런 것이다.



시는 매끄러울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단어를 흘린다. "오늘은 왜 이렇게 춥지?"라는 혼잣말도 시가 될 수 있고, "비 오는 날엔 자꾸 사람이 보고 싶다." 같은 짧은 문장도 훌륭한 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정을 담는 것이다.

비유도 마찬가지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평범한 사물도 시가 된다. "손톱, 머리카락, 아니면 도마뱀 꼬리와 같은 것." 원태연 시인의 한 줄짜리 시처럼, 시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손톱과 머리카락, 그리고 도마뱀 꼬리…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우리는 ‘그리움’을 이해할 수 있다. 비유는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시를 잘 쓰려 하기보다 진짜 마음을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아도, 사람들은 진짜 마음을 알아본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적으면 그게 시다.

시는 우리 곁에 항상 있었다. 단지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 “오늘 내 안에 숨은 시를 꺼내볼까?” 한 줄이면 된다. 아니, 단어 하나라도 좋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 나를 기억하는 작은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시를 다시 읽으며 미소 지을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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