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미덕 - 자라나 안자라나

-씨앗은 자기에게 딱맞는 온도, 햇빛, 수분, 토양을 기다린다

by 걷는사람

몇년 전까지 우리집 거실 베란다 창가에서 키웠던 벵갈고무나무는 첨부터 키가 2미터가 넘었다. 처음 사올 때부터 키가 커서 맨 윗쪽 잎파리들은 잘라주었다. 나뭇잎이 너무 커서 천장 불빛을 가리고, 거실을 어둡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어느정도 가지치기를 하고 창가에 둔 다음부터 남편은 가끔 고무나무를 보며 말하곤했다.

"자라나?, 안자라나?..."


워낙 키가 커서 더 자라는지도 모르겠고 나뭇잎이 워낙 무성해서 잎이 더 나는지 자라는지 아니면 멈춘 건지 알수가 없으니 말이다. 자라나 안자라나... 자라고 있다고 항상 팽창하거나 성장하는 것도 아니며, 안 자란다고해서 성장을 멈춘것도 아니다.


나무를 보고있으면 나무는 자기가 어디까지 클지 다 알고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춘다. 나무는 더는 자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끗이 받아들인 듯하다. 높게 자라기도 하고 두껍게 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부은 자기의 운명을 아는 듯이 적당히 자라고는 멈춘다.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작은 나에게 주는 미덕 같다. 나도 어쩌면 나무처럼 더는 자랄 수 없음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게 아닌가 싶다. 딱 이정도의 크기와 이정도의 무게로 살아가는 게 나의 운명임을 어린 아이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더는 자라는 것을 일찍 포기했기에 더 많은 방법을 알아냈다.


나무나 사람이나 자라다가, 자람을 멈추었다가, 점차 쇠락하다가 소멸하는 길로 들어설 것이다. 저 나무는 얼마나 더 자랄까? 사람도 어른이 되고부터는 성장을 멈춘다. 그때부터는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사람들도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20대, 30대, 40대, 50대라고 세대를 구분지으며 나이테 구간을 힘겹게 넘어간다.


말 못하는 나무는 물이 너무 적으면 수축되고 물이 너무 많으면 부패한다. 물이 충분한지 알려면 나무의 맨끝트머리에 난 잎파리를 보면 된다. 맨끄트머리의 잎파리까지 파랗고 건강하면 물이 그 나무의 가장 어리고 약한 부분까지 물과 영양분이 잘 전달되고 있음이다. 내가 주는 물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나무의 가장 약한 부분까지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 씨앗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 그 기회를 타고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듯 싹을 틔우려면 그 씨앗이 기다리고 있던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과 다른 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가 있어야 한다.” By 호프 자런, 랩걸


사람도 그러하다. 어쩌면 우리 안에는 아주 작고 단단한 체리 씨앗이 하나씩 있어 싹을 틔우고 성장할 수 있는, 딱 맞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 부드러운 바람과 가끔 들리는 소음까지 우리 각자에게 딱 맞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말 못하는 나무, 아직 크지못한 씨앗이지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12월. 겨울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