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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Apr 21. 2023

6.(유) 라스토레스 정상-포기할 결심과 다시 일어설때

처음 트레킹, 파타고니아 이야기

포기할 결심

  애초에 파타고니아 트래킹이 쉬울꺼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힘든 돌길일 꺼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포기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둘째날, 5만보를 넘게 걷고 프렌치 계곡을 다녀와 거의 밤 9시 넘은 환한 밤에 산장으로 돌아오면서 큰 결심을 했다. 남미까지 와서, 여기 가겠다고 큰돈 들이고 와서는 중요한 토레스 삼봉산 정상에 안 간다고 결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저질체력을 보니 이제라도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포기할 결심.

  언제가 들은 얘기다. 어떤 소심한 아이가 있었는데 통 할말을 못하자 주변에서 이런 애기를 한다. "용기를 내! 넌 할수 있어. 용기를 내서 말 해!" 그러자 아이는 말한다.

            “그래요. 난 할수 없어요!”


  맞아. 할수 없다고 말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온종일 걷고 돌아와 도모 프란세스 산장에서 겨우 잠을 청하면서 포기할 결심을 한 내가 내심 자랑스러웠다. Live Simply... 그래 쉽게살자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음날 아침 일어났더니, 발도 멀쩡하고 할 수 있을것 같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빼독패치도 한몫을 하는것 같았다. 남편도 힘들었으나 또 해보겠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포기하기로 했는데, 남편의 말에 겸연쩍게도 포기할 결심을 접고 다시 가게되었다. 셋째날도, 넷째날도 어김없이 매일밤 잠들때는 늘 포기할 결심이 확고히 섰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포기할 결심을 접고 또 한번 사기당하는 심정으로 발을 뗐다.


불타는 고구마, 라스 토레스 삼봉산

그렇게 해서 결국 파타고니아 W트레킹의 마지막날, (유)에 해당하는 토레스 산 정상까지, 왕복 20킬로가 넘는 트래킹을 다녀왔다. 이른 아침 일어나 센트럴 산장에서 아침식사를 든든히 챙겨먹고 산비탈과 계곡을 끼고 토레스 정상까지 가는 일정이다. 센트럴 산장의 탁트인 창 밖으로 보이는 토레스 삼봉산을 한눈에 담고 출발한다.

  라스 토레스는 빙하산 맨 위정상에 빙하물이 녹아 고인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세개의 기다란 암벽 봉이 우뚝 둘러싸고있어 흔히 삼봉산이라고 불리운다.해뜰무렵 붉은 태양에 비친 봉우리들이 마치 붉게 구운 고구마 같이 생겼다. 유투브에 파타고니아 삼봉산 치면 불타는 고구마 동영상도 볼수있다^^

  라스 토레스로 가는 산비탈은 경사가 심한 산 옆을 위태롭게 걸어가 흡사 중국의 윈난성을 걷는 느낌 같았다. 끝을 가늠키도 어려운 파타고니아의 숲이 저 멀리로 이어져있고 그아래 깊은 계곡을 지나 칠레노 산장에서 한숨 쉬어본다. 여기서 멈추어도 된다. 매일 포기할 결심을 했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다. 여기서 멈출까? 어디서 포기할까? 나는 틈만 나면 포기할 핑게를 찾고있었다. 계곡물 옆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흙먼지 투성이 신발을 벗고 바지를 털고 심지어 웃통을 벗고 수영까지 하고있었다. 일찍 정상에 다녀온 사람들이다. 부럽기도 하고 우리도 할수 있을거 같았다.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걸어나갔다. 마지막 마의 구간으로 불리우는 곳은 갈수록 급경사에 돌무더기 투성이라 힘들었다. 마지막엔 오직 1미터 앞만 보고 한걸음만 가자고 나를 다독였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볼수록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한번에 1미터씩만 나가자. 한번에 딱 한걸음씩만. 결국 라스 토레스 정상에 올랐다.


트레킹 때 My Five Guys

  처음.. 오랜 트레킹을 하다보니 필수템이 생겼다. 한국서 가져간 믹스커피, 라면스프, 고추장, 빼독패치, 스탠리 작은 보온물병 다섯친구들이다. 아 ... 트레킹할 때 이 친구들은 거의 윤선도의 '오우가'에 버금가는 훌륭한 아이들이다.

  힘들었던 날 잠에 들때는 내일은 안가리라 결심한다. 그러고는 다음날 일어나 습관처럼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씩 기운을 낸다. 계속된 버스 이동, 산행에 지쳐들어온 날은 슈퍼에서 닭과 생마늘을 사다가 삼계탕을 끓여먹기도 했다. 고추장과 남은 라면스프를 넣고 끓이면 왠만한 삼게탕보다 낫다. 밤에 잠들때는 발바닥에 빼독패치! 이름이 좀 없어보이긴 하지만 학실히 뭔가 효과는 있다!


저질체력부부가 다시 일어날수 있을때

  매일 밤 지쳐쓰러질 때는 내일은 안가리라 포기할 결심을 해놓고는 다음날 아침엔 또 한번 더 속는 심정으로 나서본다. 오늘도 자신감은 없지만 피차일반인 저질체력 부부 둘이 나서니 전우애도 느껴지고 서로 가볼때까지 가볼수 있을것 같았다. 중간에 실패해도 중간까진 간거니까. 그리고 파트너도 비슷한 처지이니 서로 마음에 부담도 안된다. 사람 인 자가 두 사람이 서로 기댄것 아니던가. 사람은 본래 혼자서는 설수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이걸 평소에는 못느끼다가 힘든 파타고니아 여행을 함께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If you go fast, go alone. If you go far, go together". 긴 여행에서 파트너는 얼마나 중요하던가? 굳이 리더는 필요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같이 간 남편이나 나 둘 중에 하나가 뭘 리드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가 나머지를 책임질 필요도 없다. 그저 같이 갔던 파트너가 같이 할 수 있겠다고 하니 나도 같이할 용기가 생겼을 뿐이다. 서로에 대한 약간의 책임감과 약간의 배려와 약간의 의지. 내가 안 가면 그라도 갔겠지만, 혹은 그가 안 가면 나라도 갔을 것이다. 그러나 백짓장도 맛들면 낫다더니.. 저질체력도 맞들면 나은걸까? 우리 둘 다 비슷한 수준의 저질체력이다 보니 힘든 것도 비슷했고, 지쳐 떨어질 무렵도 비슷했다. 그런 그가 다시 갈수 있겠다고 하니 나도 해볼수 있을것 같았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든 여행일수록 파트너 동반자가 중요하다. 오래 가야하는 여행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말없이 깊이 동감하였다.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온 파타고니아.. 지금까지의 20년보다 앞으로 20년, 30년, 아니 그 이상도 함께할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서로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모자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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