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트레킹, 파타고니아 이야기
남미에 오기전엔 파타고니아가 무슨 도시나 큰 공원이름인줄 알았다. 심지어 옷가게 이름인줄 아는사람도 많았으니까.. 칠레의 파타고니아는 광대한 토레스 델파이네 국립공원 안에 W, O 모양의 트래킹 루트를 조성해놓고 딱 이 트래킹 코스 안에서 충분한 트래킹이 가능하도록 산장과 캠프사이트, 편의시설이 잘 구축되어있다. 국립공원 자체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한참 떨어져있어 고속버스나 자가로 이동해야하고, 국립공원 입장료만 해도 개인당 4만 페소이니 원화로 6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다. 공원 안에 숙소로는 지정된 산장 밖에 없으며, 이 산장이 캠프사이트 기능도 하여 여기서 캠핑을 할 수 있다. 즉 공원까지 접근이 매우 어렵고 산장 숙소 예약도 코스 이동거리를 계산하여 미리 몇박을 할지 예약해둬야하니 처음 가는사람은 여기서 대개 포기한다. 반면 일단 공원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광활한 파타고니아의 자연이 때묻지 않은 상태로 멈춰있다. 일체의 차량통행도 없고, 도로도 없으며 도시와 문명의 흔적도 없다. 적게는 4일 많게는 10일 이상을 온전히 원시 자연속에서 걷고쉬다 올수있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는 모레노 빙하를 중심으로 로스 글레시아스 국립공원으로 지정돼있다. 여기에 모레노 빙하 뿐만 아니라 남미의 최고봉인 피츠로이와 세로토레 산이 있다. 트레킹은 이 피츠로이와 세로토레 산 일대를 걸어가는 코스인데 등산 전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엘찰텐 마을에서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피츠로이 산 트레킹 지대로 들어가면 산장이 따로 없고 캠프사이트만 있으며 편의시설도 거의 없다. 산장이 없기 때문에 피츠로이를 갔다가 엘찰텐 마을로 내려와 잠을 자고 다시 다음 여정으로 가야한다. 여기는 산 하나를 당일치기로 올랐다 내려오고 다시 다른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당일치기 코스가 가능하며 엘찰텐 마을에서 등반객들이 쉬고 즐길수 있다.
칠레에서의 W(더. 브. 을. 유.) 4일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이동하는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지정된 국경이동 버스를 타고 칠레에서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간다. 국경선에 경비대가 있어 여권과 신분 확인을 하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국경을 넘는 도로가 유명한 루트 40이다. 40번 국도를 통해 파타고니아의 심장부인 피츠로이봉까지 가게된다. 중간에 슬라브 지붕응 씌운 단층짜리 휴게소를 지난다.
아르헨티나 국경선 도로부터 파타고니아를 끼고 가다보면 어느새 풍경이 바뀌어있다. 같은 파타고니아 지녁인데도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산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아르헨티나는 황량함에도 역사가 서려있는지 다 벗겨진 페인트칠, 떨어져나간 지붕, 삐져나온 철골 구조물에서 과거의 부와 영광이 이제는 허물어졌다는 걸 말해주었다.
피츠로이로 가기위해선 중간에 아르헨티나의 엘칼라파데 도시를 반드시 경유하게 되어있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한시간 정도 깊숙이 들어가면 모레노빙하를 볼수있다.
모레노 빙하는 파타고니아 빙하공원에 있고 공원입구까지 도시에서 차로 한시간을 가야한다. 택시타고 가는 내내 왜 이렇게 불편하게 했을까 싶지만, 달리 생각하면 빙하라는 것이 오직 기온과 온도에 영향을 받는건데 인간의 접근을 최대한 막아야한다. 그런 취지에서 도시에서 초치재한 멀리 공원입구문을 낸덧니리라. 먼길, 3만원이 넘는 입장료까지 내고 투덜투덜 들어간 모레노빙하는 생각보다 매우 좋았다.
보통 대단하다고 하는 곳은 엄청 기대를 부풀리게 해놓고는 가면 너무 작던가 아니면 웅장한데도 멀리서 보게 하여 결국 또 작아지는 게 대부분이다. 여기 모레노빙하는 그 반대였다. 생각보다 매우 가까이서 빙하를 볼수있고 수킬로가 넘는 긴 빙하 사방을 볼수있게 걸어보는 둘레길이 잘 조성돼있었다.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도 올수있도록 트렉이 낮은 경사로 길게 구축되어있다.
빙하를 보고있는데 바로 내앞에서 빙하 크렉이 두둥 소리를 내며 끊어지고 떨어진다. 크렉은 작은데 끊어지는 소리가 마치 천중소리같이 웅장하게 들린다. 아마 겉으로 떨어지는 빙하크렉도 실은 수만년전에 쌓인 가장 깊은 곳의 빙하들이 가장 아래서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천둥소리처럼 밑에서부터 웅장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모레노 빙하를 거쳐 피츠로이 봉에 오르기 위해 다시 엘찰텐 마을로 들어갔다. 도미토리 호스텔 시설이 너무 열악하여 몸만 뉘이고 아침일찍 나가려고 했다. 그런 나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이곳이 바람의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바람이 힘껏 불었다. 생각지도 않게 바람이 막아서는 날, 마침 일정도 없다. 이런날은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 어슬렁어슬렁 가서 웨이터가 추천하는 양고기를 먹어본다.
여행하다 보면 그중간에 비어있는날도 필요하다. 일정 없는날, 전문용어로 널럴한 날을 중간에 끼워두면 촉박하게 달리던 일정중에서도 숨 쉴 공간이 생긴다. 그리고 다음 일정도 재점검해 볼 수 있다. 오늘은 일정이 없으니까.. 오늘만큼은 창틀 사이로 스며오는 스산한 바람도 느껴보고 비가 온다면 맞아도 좋다. 바람막이나 고어택스로 꽁꽁 막지말고... 쉬어가자.
누구나 계획을 짤때는 모든 날을 낭비없이 타이트하게, 알차게 준비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도 그럴것이 멀리까지 오는데 교통비와 숙박비가 이미 많이 나갔기 땜에 최대한 많이 보고오고 싶어진다. 속된 말로 뽕을 뽑고 싶어진다.
누가 농담처럼 한말이 생각난다. 부자는 뽕을 뽑지않아요... 부자여서, 혹은 부자이고 싶어서 여유를 부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여유 있게 살기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그 계획대로 실행해야만 내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내 보폭에 맞춰, 촤라락 소리 내며 자갈을 스치고 밀어내는 빙하물 소리도 들으며 속도를 조금 늦춰도 된다.
오늘 좀 쉬면 내일은 좀 많이 걸으면 된다. 내일이 아니면 그 다음에 더 빨리 걸을 수도 있다. 또다시 올 그날은 어쩐 일인지 바람이 더세게 불어와 우리를 데려다줄지도 모른다. 내 계획이 나를 지배하면 안된다. 내삶의 주인은 나니까. 내가 내 계획을 콘트롤 할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