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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Jun 08. 2023

10.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세여자

처음 트레킹, 파타고니아 이야기

온전한 고립과 고독 ... 로밍은 왜한거야

   이제 파타고니아 트레킹도 마무리 시점에 왔다. 마무리하며 생각해보면 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산장 속에서 고즈넉하고 고요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수 있다는 점이었다.

   산장 시스템이 잘되어있어서 깨끗하고 심풀하면서 필요한건 다있다. 토레스 델파이네 국립공원으로 일단 들어오면 산장이나 캠핑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는데, 이 안에서는 다른 일체의 것들이 차단된다는 점이 또 좋다. 차로 이동도 불가하고 오직 걸어서만 다녀야 한다. 그래서 동행자, 파트너가 정말 중요하다.

   인터넷도, 통화도 안된다. 내가 도대체 로밍은 왜한거야? 황당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한국에 혼자두고온 중학생 아들이 걱정됐다. 매일 전화한다고 했는데 내리 일주일을 아무 연락도 할수 없었다. 별일이 없기를 바랄 뿐 수용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외부의 생활, 고민, 일에서 차단되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남미 파타고니아는 지구 반대편에서 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가기만하면 트레킹에 더없이 좋고 고독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편안한 곳이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탱고

   이제 파카고니아의 트레킹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여행지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왔다. 쉼없이 걷다 마지막을 이 도시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 좋았다. 먼저 쉼표를 찍고 여행의 여운도 좀 정리하고 싶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남미의 유럽이라고도 한다. 남미에 유럽의 이민자들이 몰려들어오면서 한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파리보다 더 화려했다 한다. 실제로 길을 걷다보면 과거의 영광과 회한이 곳곳에 서려있다.

  그중에서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가 어디인가? 탱고의 본고장이 아니던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탱고 공연장이 많다. 늦은 저녁식사와 와인을 겻들이며 탱고쇼 공연을 본다. 아주 비싼 공연도 있지만 저렴란 공연도 많고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길모퉁이에서 보는이가 있든없든 누구나 탱고를 춘다.

   탱고는 춤을 춘다라기 보다... 탱고를 한다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본디 탱고는 유럽의 하층 노동자들이 남미 아르헨티나로 이민 오면서 처음 항구도시에서 생긴 춤이라고 한다. 춤이라고 하기에는 정형적인 룰이 없고 다소 슬픈 음악을 배경으로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내 몸을 맡긴다. 아무것도 자랑할것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각자의 삶의 무게를 맡기고 음율과 리듬 사이를 넘나든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우연히 프랑스 화가 브라질리에의 전시를 보러가게됬다. 브라질리에가 그린 아르헨티나의 탱고 연주 장면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에 빠져들었다.


세여자의 우정에 건배를

   우울해있다가도 믹스커피 한봉지로 급 행복해지는 나에게 사실 고급 커피란 사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가장 오래된 까페 토르트니를 가려고 했던건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현지인들이 숨겨두고 찾는 휴식처라고 했다.

   까페 토르티니는 1850년대에 남미에 생긴 최초의 유럽식 식당으로 식사와 커피, 그리고 작은 음악공연을 해왔다. 여기서 밤 늦게 식사를 하면 작은 탱고무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탱고쇼가 본업이 아니라 식당에 수준높은 탱고공연자들이 와서 작은 무대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쇼가 본업이 아니고 식당의 전통도 있어 대규모 예약을 받지는 않고 매일 선착순으로 식당예약만 받는 식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이었는데 이미 그날 식당은 예약완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날 낮에 커피를 마시러 다시 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서깊은 까페에 왔으니 커피는 먹어봐야지? 하고 주문했다. 쓰면 커피고 달면 믹스커피겠지.  그런데 나의 절대 마이너스 미각에 경종을 울리듯이 커피맛이 깊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카메라 화면 중간에서 저혼자 슬로우모션으로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커피 한모금 마시던 순간 시간이 느려지고 이순간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을 남기려고 커피를 마시다가 촌스럽게 셀카를 찍었다.

   찍고나서 사진을 보니 왠걸.. 내 셀카에  내가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내 뒤에 있던 세여자가 나를 보며 웃고있었다. 우연히 찍혔나? 하고 이번엔 다시 제대로 포즈를 잡고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보았더니, 역시 내 셀카에 주인공은 저기 세 여자였다. 남의 셀카를 자신들의 무대로 활용한 세 여자들에게 건배를 청했다. 이들도 재밌었던지 한참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같이 웃었더랬다.

   그래. 남의 무대면 어떠한가? 남이 만든 게임이면 어떠한가? 남이 만든 무대라도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내 셀카에 들어온 저기 저 세여자들처럼, 그들의 사연이 무엇이건 내 무대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나 또한 그들 여행의 한 장면에서 한 추억꺼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무대에 내가 얼핏 비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무대 같은 건 없었다. 길이라면 그냥 걸어나가라. 길이 아니면, 그래도 걸어나가라. 네가 걸어온 길이 오늘부터 길이 될 것이다.

  Enjoy your life, Enjoy your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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