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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May 27. 2023

9. 남미 최고봉 피츠로이에 오르다

처음 트레킹, 파타고니아 이야기

피츠로이, 아아, 피츠로이 

   피츠로이 트레킹은 엘찰텐 마을에서 바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정으로 7~10시간 정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피츠로이봉은 비글호 선장의 이름을 딴것이다. 원래 불의 봉우리란 곳으로 예로부터 파타고니아 원주민들에게 신성시되었다고 한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라는 배를 타고 남미를 탐험하면서 갈라파고스 군도에도 갔다. 바로 이 비글호 함장이 피츠로이 경이었는데, 피츠로이 경 자신이 영국의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지질학자였다. 피츠로이가 본인 말동무로 태우고 간게 다윈이라고 한다. 결국 남미의 최고봉은 피츠로이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피츠로이가 되었다.

   아르헨티나 피츠로이와 칠레 파타고니아 정상을 굳이 비교하라고 하면, 아르헨티나 피츠로이는 산 하나, 산 하나가 미봉이고 하루 하루 다녀올수 있다. 반면 칠레는 최소 4일에서 10일 정도 산과 호수를 트레킹을 하며 봐야한다. 따라서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걱정된다면 아르헨티나 피츠로이 트레킹을 1박 2일 정도 코스로 잡고 다녀오는 것을 강추한다.


엘찰텐에서 피츠로이로 올라가는 길

   어제 그렇게 바람이 많이 불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아침부터 날이 맑았다. 엘찰텐 마을 입구에서 피츠로이 트레킹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걸어가는 내내 양옆으로 높은 산과 암벽이 산맥을 이루는 가운데 계곡이라기엔 넓은 야지에 자갈과 야생화, 낮은 잡목들이 아름답게 펼쳐져있었다.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마치 누가 인위적으로 정원을 조성해놓은것 같았다. 앞으로 걸어가다가도 주춤주춤 자꾸 뒤를 돌아보게된다. 피츠로이 봉 정상으로 가는길이긴 하지만 이 트레킹 길 자체가 참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빙하물이 녹아 하얗다는 블랑코 호수를 지나 산길, 물길, 돌길을 지나갔다. 어떤 길 하나도 인위적으로 내지않고 한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길이 형성돼었다. 조금 큰 돌과 나무 표지막대로 길을 알려줄 뿐이었다. 변변한 길 안내판도 없이 무엇이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길을 터벅터벅 가다보면 어느새 산정상으로 향하는 곳에 와있다.

   여기도 정상부분은 끝 모를 돌길을 올라가야한다. 이번에도 딱 1미터 앞만 보고 가자. 한걸음 씩만 가자. 거의 다 왔을 때쯤 체력이 거의 고갈됬다 싶을 때쯤에도 마지막 한고비가 남은 것을 보고 내심 이제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발바닥에 불이 나서 몇번이나 등산화를 벗고, 양말까지 벗고 조금이라도 발을 식히고 나서야 걸을 수 있었다. 남편이나 나나 저질체력인건 서로 아는데.. 이번엔 남편이 묵묵히 앞장서고 걸었다. 나도 천천히 정상 피츠로이 봉과 빙하호수를 향해 마지막 발을 뗐다.  


피츠로이 정상에 오르다.

   바로 앞 1미터만 보고 가다 어느 순간 더이상 오를곳이 없을 때 고개 들어 보니 정상에 다달랐다. 피츠로이봉과 그옆의 형제봉들이 웅장하게 파노라마처럼 서있었다. 여기가 남미의 최고봉 피츠로이구나. 피츠로이 옆에도 봉 3개가 웅장하게 서있는데 산악인이 아닌 파타고니아 상공에 항공우편루트를 개척한 3명의 프랑스인 파일롯을 기려 명명하였다고 한다. 어린 왕자'의 저자인 생 텍쥐페리와 그가 아르헨티나 우정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의 동료였던 쟝 메르모즈와 앙리 기요메.

   바로 여기 피츠로이 봉 앞에서 입으려고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파란색 파타고니아 패딩조끼를 입지않았던가. 지친 몸을 글고 정상이 내려다보는 바위 틈에 겨우 몸을 붙이고앉았다. 아래로 펼쳐진 빙하호수에는 구름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 아래 빙하호수의 한 귀퉁이에서 남편은 십층 돌탑을 쌓고 돌아왔다.

  목마른 나를 위해 빙하호수 물을 떠다가 한국서 가져간 커피믹스 마지막 봉지를 뜯어넣었다. 파타고니아 빙하수로 만든 냉커피를 마시니 감회가 새로웠다. 파타고니아의 정상 피츠로이에서 마시는 세상 유일한 빙하커피...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

   피츠로이를 내려다보는 바위 사이에 자리를 잡고앉아 빙하커피를 아껴마시면서 보니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부터 매일매일 망설이던 순간까지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파타고니아의 정상 피츠로이에 올라와 비로소 알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었다. 평생 소망하는 것을 얻기위해 많은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결심이나 몇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만 올수 있는것도 아니었다. 파타고니아에 오겠다는 꿈을 이루는데 제일 중요한건 무엇이었을까? 돈? 시간? 등산스틱 Stick? 그럴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건 의지이다. 등산스틱 말고, 나의 마음을 따르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You might need sticks. But more importantly,  you need to stick to your heart.) 결행하려고 했던 것을 결행하려는 의지, 그것을 부여잡고 놓치지않으려는 의지..그것이 더 중요하다.

   피츠로이 트레킹을 하면서 보니, 운동화에, 반바지에, 그냥 티셔츠에, 두꺼운 청바지 차림으로 힘겹게 올라온 사람도 있다. 스틱이 없으면 나무 막대기로도 올라오고 그냥 손으로 바위와 돌을 잡아가며 올라오기도 한다. 등산가방이 없으면 에코백에, 비닐에 물병을 담고 흔들리듯 올라오기도 한다. 파타고니아에 오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중요한 건 꺽이지않는 마음이다.


발가락까지...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이번에 큰맘먹고 파타고니아 트래킹을 다녀올때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내가 과연 이 나이에 해낼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트레킹을 해보지도 않은 내가 가장 어렵다는 파타고니아를 간다고? 그러나 내 버켓리스트에 있는 것중 가장 어려운 것, 나이가 먹을수록 절대 힘들어질 것 같은걸 먼저 하자고 결심하고 저질렀다. 변변챦은 등산화를 신고 열흘이 넘는 트래킹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발톱을 깍고나서야 알았다. 발가락끝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원래 나는 두 발의 두번째 발가락이 모두 특이하게 길고 구부러져있었는데, 이 구부러진 둘째 발가락 발톱이 까맣게 멍들어있었다. 멍들고 상처난 내 발가락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마지막에는 걸을 힘도 없었는데 발가락 힘으로 걸었던 거구나. 발가락까지도 제몫을 다하였구나. 꺽이지 않으려고..마음 뿐만 아니라 온몸이, 발가락까지 역할을 다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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