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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Oct 05. 2022

김보희의 색, 이토록 다른 제주

행복한 그림읽기 1

ㅇ 김보희와 제주, 이토록 다른 초록

   갤러리를 다니며 그림보기를 즐겨한다. 김보희의 전시를 여러번 찾아보면서 마음속에 행복한 울림이 있어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을 적어본다. 특히 2020년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유례없는 호황을 기록했던 동양화가 김보희는 제주의 자연과 나무, 풀이 갖는 다양한 초록색을 정말 무수한 색감과 명도, 채도, 형태를 통해 다양하게 표현했다. 실제로 누구나 제주에서 나무와 풀, 자연을 보며 느끼는 그대로다. 다 초록색인데 어쩜 그리 다른지. 김보희의 작품을 연도별로 보면 그 차이, 변화가 느껴진다. 90년대 작품은 그냥 수묵채색 풍경화에 구도도 일반적인 풍경화 구도를 유지하고있다. 아래 1993년 작품 <제주도>는 제주의 풍경을 정직하고 안정적으로 그렸다.원근감이 느껴지고 가로로 유려한 제주의 선이 잘 드러나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그러나 이후 2003년 작가의 제주 이주 이후 그리고 2010년대가 되면서 작품은 확연히 대담해진다. 풍경이라기 보다 나무하나, 풀 한섶, 솔방울을 그린다. 풍경화라기보다 정물화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정물화이면서 제주의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바로 색이다. 몇년전 우연히 김보희 작품을 보자마자 내 가슴이 뛰었던 것은 고향 앞마당에 온것 같았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구도와 강렬한 색감의 사용, 엄청난 크기, 원근감을 무시한 대범함 등은 모두 일반적인 풍경화나 한국의 수묵화와는 거리가 먼것이었다. 아래 2010년 작품이 이런 변화를 확연히 보여준다. 같은 제주의 자연을 그리되 구도, 색감이 완전히 바뀐다.


ㅇ 재료의힘 - 수묵화를 그리듯 담백하게 펼치다

     김보희는 원래 이대 동양화과 교수로 오랜기간 재직한 동양화가이다. 이 이력을 알기 전부터 그의 그림을 보고 드는 생각은 마치 수묵화를 그리듯이, 수묵 채색화를 그리듯이 광목천이나 캔버스 천에 물감으로 색칠했다. 김보희는 오랜 작가 경력을 토대로 수묵화->유화->캔바스에 수묵채색(Color on Canvas)으로 이어지는 재료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도 처음엔 제주의 자연을 그리면서 캔버스라는 서양화 천에 유화물감을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 자연, 나무, 풀이 가진 색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다시 수묵채색으로 돌아와 수묵채색 물감을 사용해 제주의 자연을 그려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유채새으로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색채가 부담스럽지 않고 한톤 죽은 듯한 색을 보이고, 그러면서도 생명력을 보인다.  


ㅇ앵글, 구도의 힘

  커다란 광목천에 나무나 풀이 크게 펼쳐져있다. 어쩌면 실물크기 만큼, 혹은 실물보다 더 크게도 그려져있는데, 그의 그림이 좀 다른 것은 배경도 없이 나무만 있다거나, 혹은 특정한 어느 부분이나 각도만 사각 화폭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마치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갖다대고 앵글을 잡으려다가 어느 순간 남들이 보지않는 어느 한 부분에 앵글을 대고 스냅샷을 찍은 것 같다.

  자연과 나무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도 대개는 그 자연이 속한 구도를 그린다. 예를 들면 제주의 성산일출봉을 그릴때는 대개 아래는 바다, 위에는 하늘을 같이 그리는 식이다. 그래야 성산일출봉의 공간감과 자연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10월의 붉은억새를 그릴때에는, 혹은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하늘이나 드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담아  그것이 들판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무를 그리고 싶을 때는 나무 위에 하늘, 주변의 담벼락이나, 꽃이나 집을 같이 그린다. 나무나 자연을 주인공으로 놓았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인간의 의식 한편에는 뭔가와 조화로이 같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있는것 같다. 하다못해 나무 하나를 그리던가, 꽃을 그리던가, 나무와 꽃을 그리던가, 나무에 기대 서있는 사람을 그리던가 등등 뭔가 스토리나 전개가 있다.

   그러나 김보희는 이런 자연의 일반적인 구도를 파격한다. 풀, 선인장, 꽃, 심지어 꽃중에서도 꽃잎, 나무 중에서도 잎파리, 혹은 소방울, 야자수의 무수한 잎들, 사초를 중심에 직설적으로 담는다. 심지어 여백없이 스냅샷을 구사하기도 하고, 공간이 차있어야할것 같은 곳에 여백을 두기도 한다. 갤러리에 들어가면 보통 2미터가 넘는 커다란 크기의 캔버스에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커다란 잎파리가 나오거나 나무의 한 부분, 어느 귀퉁이 한 가지만 부각되서 나오기도 한다. 마치 나도 있었다고 강변하는 듯이 훅하고 들어온다. 얌전한 수묵채색화를 기대하고 갤러리에 들어가면 안된다. 자연 속에 있어도 그림 속에 담은 자연은 또 다르다. 기대하지 않았으나 불편하지 않은, 제주에 없어도 제주에 있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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