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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명령이 위법하다면?

샐리 예이츠 미 법무차관(S. Yates, 1960~)의 이야기

by 걷는사람

공무원의 복종의무 vs. 정치적 중립


2017년 1월 한겨울,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트럼프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취임 5일만에 이민금지 행정명령을 내린다. 이제 막 권력을 쥔 대통령의 명령이었고 선거기간 내내 반이민정서를 부추겼기에 이 명령은 신속하게 집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소관 법무장관은 이를 위법하다고 거부했고 대통령은 10일만에 장관을 해임한다. 아마도 미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무원의 불복종사건이 될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샐리 예이츠 미 법무장관 대리(차관)이다.


마침 당시 나는 미국에 머물고있던 터라 실시간으로 진행되던 이 논쟁을 재밌게 관찰할 수 있었다. 예이츠의 사례는 공무원의 복종의무,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위법한 행정명령에 대한 복종과 불복종 등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그리고 이런 쟁점은 국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하고 실제로도 종종, 아니 꽤 자주 일어난다는 점에서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샐리 예이츠: 검사로서 법무부 차관까지(1990~2017)


샐리 예이츠는 1960년생으로 법률가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판사, 할아버지는 수십년간 연방대법관까지 역임했고, 할머니까지 그 옛날에 로스쿨을 나오는 등 100여년 이상을 유지해온 명문 법조집안 출신이다. 샐리도 자연스럽게 변호사가 된 후 조지아 주 민주당 상원의원인 Sam Nunn 의원실에서 인턴을 시작한다.


예이츠는 로스쿨 졸업 이후 30세인 1990년경부터 연방검사 일을 시작하고 주로 검사와 법무부 직원으로 30여년간 공직생활을 해오다 오바마 정부에서 법무차관으로 임명되었다. 오바마 정부 말기 법무장관 공석에 따라 장관대리를 하던 중, 2017년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장관대리를 계속 하고있었다.


예이츠는 로스쿨 졸업 이후 30세인 1990년경부터 연방검사 일을 시작하고 주로 검사와 법무부 직원으로 30여년간 공직생활을 해오다 오바마 정부에서 법무차관으로 임명되었다. 오바마 정부 말기 법무장관 공석에 따라 장관대리를 하던 중, 2017년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장관대리를 계속 하고있었다.


2017 Jan 31, https://images.app.goo.gl/2aTu1Atyz1oHxj778.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예이츠가 법무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법무부의 한 전직 고위 관리는 "많은 사람들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샐리와 그녀의 동료들을 찾았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또 다른 고위 관리는 예이츠에 대해 "실은 대통령이 장관보다 샐리 차관을 정책업무에 더 헌신적이고 효과적으로 보았다."예이츠 차관은 공직자의 책임감과 전문성, 조직장악력을 두루 갖춘 검사 공무원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2017년 초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당분간 샐리 차관을 유임하기로 공표했던 것이다. 사실 2016년말에서 2017년 1월까지 트럼프 대통령 및 인수위 측에서는 법무부장관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전 정부 민주당에서 차관이 된 예이츠 차관 교체를 검토하였으나 장관대리로 당분가 써도 문제없겠다고 판단했다. 전 정부 공무원이지만, 비교적 중립적이었고 오랜 법조경력과 전문성으로 법무부 직원들의 신임을 받아왔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이민법 행정명령


그런데 현실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이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역시 어디까지 지켜져야하는지 두가지 쟁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발생한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무슬림국가 출신자들의 입국을 금지(Travel Ban)하라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내린다. 트럼프는 이미 선거운동 기간 내내 미국사회에서 이민자에 대한 반발심리를 부추기고 반이민정서를 선거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바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조치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명령을 내리면서 정작 실행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장관대리를 맡고있는 예이츠 차관에겐 알리지 말라고 한다.


예이츠 법무차관에겐 알리지 마!


당시 예이츠는 집에서 쉬다가 뉴스를 듣고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신속한 검토 결과, 당시 법무장관대리였던 예이츠 차관(Sally Yates)은 대통령 명령이 위헌,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불복종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렇게 해서 미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무원의 명령불복종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예이츠의 행위가 정치적으로 편파적이라는 이유로 10일만에 해임한다. 반면, 예이츠 차관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와 법무부의 공공정책 정신에 입각할 때 행정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대통령이 해임 통지를 하자마자, 백악관 대변인 Sean Spicer는 이렇게 발표한다. “예이츠 차관은 전임 오바마 정부때 임명된 사람으로 국경문제와 불법이민 문제에 있어 매우 약합니다.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더 진지해져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예이츠를 해임합니다)"


우군 없는 의회 청문회, 그리고 예이츠의 반격


10일만에 해임된 이후, 공화당 정부가 이제 막 시작했고, 막강한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의회 회의장에 근엄하게 앉아 예이츠를 꾸짖으려 하였다. 그러나 예이츠를 불러내 혼을 내고 공무원의 복종의무를 어겼다고 비난하려던 계획은 예이츠의 뛰어난 대응으로 더 화제가 되었다. 의회에서 예이츠 차관의 당당한 태도와 명쾌한 답변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2017 May 9, "Sally Yates' history and career prepared her to perform under pressure (cnbc.com)"


청문회 날 적진에 홀로 남겨진 장부(丈夫)처럼, 예이츠 차관은 무미건조한 어두운 색감의 수트에 질끈 자른 커트머리를 하고, 입도 단단하게 다물고있었다. 그 뒤의 누구도 그 옆의 누구도 전 정부 공무원이자 엊그제 권력을 잡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불복종한 예이츠 차관의 편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좁은 청문회장 내에선 카메라 플래쉬와 셔터 소리가 연신 터져나왔고, 간혹 연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우군 하나 없는 회의장에 예이츠 혼자 앉아있었다.

적진에 홀로 남겨진 장부(丈夫)처럼, 예이츠 차관은 무미건조한 어두운 색감의 수트에 질끈 자른 커트머리를 하고, 입도 단단하게 다물고있었다.
우군 하나 없는 회의장에서 아무도 예이츠를 편들어 줄것 같지 않았다.


청문회가 시작되고 공화당의 쟁쟁한 상원의원들이 근엄하게 전 공무원을 꾸짖으며 질문과 힐난을 섞어 말하기 시작하였다. 상원의원들은 오늘 청문회를 계기로 새 대통령에 대한 자신들의 충성을 생방송으로 증명할 참이었다. 처음 운을 뗀 텍사스 주의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가 미 헌법과 법조문을 들먹이며 예이츠를 가르치려던 참이었다.


2017 May 16, Our Interview with Sally Yates on the Russia Investigation | The New Yorker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훈계성 질문 직후 예이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처음엔 매우 무미건조하고 겸손하게 대답하는 듯 했으나, 예이츠는 법조문의 조항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왜 법무장관 대리로서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복종할 수 없는지 설명한다.


"이번 대통령의 명령은 우리 나라의 근본적인 원칙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의 명령이 합법적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데 어떻게 법무부가 개입하여 그것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을 집행하고 변호할 수 있습니까?" 예이츠는 "내가 법무부 장관 대행으로 있는 한, 법무부는 이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법무장관 대행으로서,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확신할 때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the acting U.S. Attorney General, refused to defend the order, saying that she was not convinced that it was lawful."


분노도 없고, 항변도 없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없었다. 정치적 의견도 아니며, 정권에 따른 차이도 아니었다. 매번 짧은 대답이었지만 예이츠의 대응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 링크 - 유투브 영상 - https://youtu.be/IAD97EW5sz4?si=qpgImzd1AfckborO


이 얼마나 간명한 설명인가! 이후 상원의원들의 질문이 이어지지만 예이츠는 계속해서 매번 해박한 법조문에 대한 해석과 전문성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제가 모든 법조문을 다 외우고 있진 못하지만, 이민과 국적법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어떤 외국인도 인종, 국적, 출생지, 종교적 이유로 미국 입국에 있어 차별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And I’m also familiar with an additional provision of the I.N.A.”—the 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that says no person shall receive preference or be discriminated against an issuance of a visa because of race, nationality, or place of birth"


이 청문회는 전국적 관심사라 생방송 되었는데, 그때마다 예이츠 차관은 전문가의 힘과 고위공무원의 책임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몸소 보여주었다.


잘못된 행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다.


물론 트럼프 정부 시기에 이 반이민 행정명령은 논란 끝에 시행되었고, 예이츠 차관의 뜻대로 정책이 바뀌지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정책이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적어도 미국민들과 미국사회는 그를 두번이나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차관의 해임 전후 과정은 대통령의 권한과 명령은 언제나 절대적인지, 그리고 공무원과 군인은 항상 복종해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여러 생각꺼리를 남겨주었다.


예이츠 차관의 행동은 이후 의회 청문회와 조사 과정에서 미국 사회에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미국에서 연방공무원은 400만여명이 재직중이고 공무원의 활동과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해치법”이 있다. 그러나 해치법 위반여부는 중요한 쟁점이면서도 모호한 부분이 많다. 특히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관련 쟁점은 하위 공무원보다 주로 장관, 차관, FBI 국장 등 조직의 장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정당선출직, 대통령선거 등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는가 이다. 예이츠의 사례는 자신의 이권을 위해 권력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공무원으로서 상부 대통령의 명령에 불복종하되, 자신의 판단에 근거하고 끝까지 공개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예이츠의 힘을 세가지로 정리해왔다.


첫째 예이츠 차관은 공무원이 갖춰야할 전문성의 힘을 보여주었다. 전문성을 가지고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축적하며 판단력과 대응력을 키워야한다. 둘째, 전문성을 가지되 조직에서 오래 버티고 신뢰를 얻었기에 차관까지도 오른 것으로 보인다. 즉, 조직에서는 단지 똑똑한 것만으로는 안되고, 조직내 동료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명령복종의 의무는 매우 중요하나 특정한 경우에 그 명령이 위법 혹은 위헌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위법한 명령일 경우 그것에 불복할 용기를 가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예이츠 청문회를 보고나서 워싱턴포스트에서는 예이츠에 대해 "잘못된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는 여자"라고 평가했다.


참고

- https://www.nytimes.com/2017/01/30/us/politics/trump-immigration-ban-memo.html?_r=0.

- Ryan Lizza, May 22, 2017, "Why Sally Yates Stood Up to Trump", The New Yorker, Why Sally Yates Stood Up to Trump | The New Yorker.

- “Sally Yates and Condoleezza Rice are do-right women in a do-wrong world.”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sally-yates-and-condoleezza-rice-are-do-right-women-in-a-do-wrong-world/2017/05/09/07d75c96-34f7-11e7-b4ee-434b6d506b37_story.html?hpid=hp_no-name_opinion-card-d%3Ahomepage%2Fstory&utm_term=.6beba7f3668f]

- 2017 May 16, Our Interview with Sally Yates on the Russia Investigation | The New Yorker

- 유투브 영상 - https://youtu.be/IAD97EW5sz4?si=qpgImzd1Afckbo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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