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36주만에 태어났다. 2.5키로가 겨우 넘었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서 간호사들이 얘는 다른 아기들한테 형님형님 하라고 놀렸더랬다. 퇴원하고 집에 오는날 매서운 겨울바람에 놀랐는지 급성 영아폐렴이 와서 또 바로 병원에 1주일간 입원도 했다. 아무래도 작게, 일찍 태어나서 그런지 어려서 잔병치레도 많은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년간 지내게 됬을때, 나는 내 일도 하면서 오직 아이들이 자연을 즐기고 자연 속에서 운동하는 것을 평생 취미로 삼길 원했다. 마침 나오기 전에 오래전에 여기 나왔던 선배로부터 그 동네에는 테니스 코트가 많은데 비싼 동네 말고 좀 저렴한 동네로 가면 레슨비도 싸고 괞챦은 테니스 코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선배도 워낙 오래전이라 그 코치에 대해 기억하는 거라곤 흑인이고 이름이 지미라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와 베이 애리아 지역의 기다란 해안 동네에서 “Black Jimmy 흑인 지미” 찾아 온동네를 돌아다니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Black Jimmy” 찾아 삼만리
"Black Jimmy"라고 흑인이라는 말을 이름 앞에 붙인다는 건 자칫 인종차별이 될 수도 있어 쉽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작은 타운 단위로 테니스코트가 있는지 한동네 한동네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이름을 물어보며 찾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이었는지, 그냥 적당한 테니스 코치를 구하면 될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운동이나 코치 레슨 이런 거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라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 한국인도 별로 없어서 적당한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거의 포기할 때 즈음, 정말 허름한 스패니쉬 계열의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 구석에서 기적같이 “그 흑인 지미”를 찾았다. 정확히는 만난 것이다.
지미의 테니스코트
캘리포니아 해안가 마을의 어느 구석 모퉁이에, 있을 법하지 않은 위치에 허름하고 이름도 없는 하드코트가 하나 있었다. 바닥이 다 닳아서 푹신푹신한게 사실상 클레이에 가까웠다. 관리자도 없고, 누구의 것이라는 표시도 없으며, 사립인지 공립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야간 조명등이 없어 해가 떠있는 동안만 레슨이 가능했다. 거기서 그는 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한달 100불, 즉 10만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매일 오후 학교가 끝나면 언제든 와도 되고 레슨은 한시간씩 해주었다.
폭풍우가 치지 않고 해가 떠있는 낮동안 지미는 항상 그 코트에 있으니 비만 안오면 가면 만날 수 있었다. 주인없는 테니스코트를 블랙 지미가 무단점유해 계속 쓰는 것 같았다. 이름도, 관리사무소도, 화장실도 없이 그냥 어느 주인없는 코트에 지미가 노숙자처럼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이동네 저동네에서 열살 안팎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언니 오빠를 따라온 아이도 있었고 이미 지미에게 배운지 몇년 되서 수준이 상당한 아이들도 있었다. 많을 때는 한 스무명 온적도 있었고, 어떨 때는 두세명만 레슨 받을 때도 있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한줄로 늘어서서 공도 치고 자세도 잡아보고, 레슨이 끝난 아이들은 옆 코트에서 자기들끼리 놀았다.
나도 처음엔 아들에게 운동을 권유했고 다음엔 딸도 배우길 시작했다. 영어로 가르치는 바람에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나나 아이들도 바로 이해는 안됬다. 그냥 영어도 어려운데 운동하는 여러 기술이나 테크닉이니 더 어려웠다. 그렇긴 해도 그의 성의있는 코칭태도나 아이들이 따르는 걸 봤을 때 그는 꽤 괞찮은 테니스 코치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지미는 어쩌다 백인의 전유물인 테니스라는 운동을 하게 된것일까? 문득 흑인으로서 그가 미국에서 살아온 여정, 환영받지 못하는 스포츠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여정이 궁금해졌다.
영화 킹 리차드 : 흑인과 테니스, 그리고 꿈
얼마전 킹 리차드 라는 영화를 봤는데 20여년 세계 여성 테니스계를 주름잡은 세레나와 비너스 윌리암스 자매를 키운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여기서도 자매들의 흑인 아빠는 선수까지는 아니어도, 테니스에 대해선 상당히 배운 사람이었다. 자매들이 테니스를 치던 1990년대 당시에도 테니스는 여전히 부유한 백인들의 귀족스포츠였다. 따라서 아빠인 리차드 윌리암스가 테니스를 배웠던 10~20년전, 즉 1970~80년대는 제대로 교육을 받았을리도 없고 어디서 환영받는 선수생활도 못했으리라.
영화는 99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흑인아빠가 흑인 딸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좋은 코트에서 최고의 코치에게 사사받게 하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흑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집도 어지간히 가난하였는데 아버지의 비젼과 열정, 그리고 딸들의 노력이 대단했다. 이 영화로 그 유명한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최초로 받았다고 하니 볼만하다.
이 영화로 유추해본건데, 지미 코치가 테니스를 배우게 된(?), 혹은 제대로 배우지못했을 수도 있으니 그냥 테니스 운동을 하는 과정은 상상할 수 없이 고되고 어려웠을 것이다. 상상해보자면 백인들이 코트 출입을 허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에게 제대로 된 경기씨드도 내어주지 않았으리라.
그 흑인은 운동할 곳을 찾아다니다 여기 캘리포니아의 가난한 시골동네 구석 끝에서 버려진 테니스 코트를 발견한 것이 아니었을까. 코트 담장을 손질하고 인근 Costco 매장에서 카트를 몇개 구해다가 연습공을 가득 담아놓고서는 혼자 공을 딱, 딱, 쳤으리라.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서 옆에서 들리는 딱, 딱, 공 튀는 소리에 하나둘씩 모여들었으리라.
슬픈 기억 혹은 해프닝
좀 슬픈 기억도 있다.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나도 어떡하든 배워보고 싶었으나, 지미는 일관되게 어른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루는 내가 너무 테니스를 배우고 싶어서 아이들 치는 도중에 나도 한번 쳐볼 수 없냐고 말했는데, 아이들 앞에서 소리치며 안된다고 했다. 그냥 거절이 아니라 마치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한 양 큰 소리를 쳤다. 옆에 있던 다른 엄마가 나를 대신해 지미에게 한번만 가르쳐달라, 한번만 쳐보게 해달라고 거들어주었다.
그러자 지미는 큰 목소리로 “저 엄마는 내 공을 받을 수가 없어. 힘도 없고, 전혀 되받아칠 수도 없어”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다른 아이들도 지미의 공을 받고, 우리 아이들도 지미의 레슨을 받는데... 오히려 어른인 나는 못한다고 하니 정말 창피하고 슬펐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던 한낮의 휑한 테니스코트에서 십여명의 아이들이 우리의 논쟁을 지켜보고 있었다. 더 뭐라고 반박하거나 읍소했다가는 우리 아이들이 창피해질 것 같아 멋쩍게 웃으며 돌아섰다. 내 편을 들어주었던 엄마는 나를 위로하며, 지미 코치가 별일도 아닌것에 화를 낸다고 속상해 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원래 사람이 친절하지 않으니 이해하라고 했다.
다시 코트를 간다면, 지미는 여전히 거기 있을까?
그날의 해프닝은 슬픈 기억으로 남았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코트를 찾아가던 길이 그려진다. 차의 창문을 열고 캘리포니아의 마일드하면서도 쌉싸름한 바다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를 따라 가면 어느 순간 오른쪽으로 허름한 1달러 마트와 세컨핸드 의류샵, 코인세탁소, 마지막 땡처리 식료품 가게가 나온다. 이민자들의 동네에 들어선 것이다. 스패니쉬, 멕시칸, 흑인들, 베트남 사람들이 한집 건너 살고 있고 집앞에는 늙고 말이 통하지 않는 노인들이 나와있다.
그 동네 구석 끝까지 운전대를 틀면 테니스 코트가 보이는 것 같다. 다시 그 테니스 코트를 다시 찾아간다면, 블랙 지미는 여전히 거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