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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준의 테니스 그림과 인생

라이프 In 테니스

by 걷는사람

얼마전 서울 삼청동에서 최승준의 테니스 코트 그림을 전시한 갤러리에 다녀왔다. <Color Field>라는 전시명처럼 테니스, 야구 등 각종 경기장과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화로 담아내었다. 테니스코트를 그린 그림이 흔치 않은데 드문 전시회 기회에 갈 때부터 설레었다.


최승준 "Color Field"


"최승준 작가의 개인전 “Color Field”는 미술 용어인 ‘색면추상’에서 출발하여, 테니스 코트라는 독특하고도 상징적인 공간을 통해 삶의 순간과 그 깊이를 새롭게 탐구한다. ....

테니스 코트는 단순히 경기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축소판으로 읽힌다. 라인을 가로지르는 엄격한 규율과 냉혹한 경쟁, 그 이면에 숨겨진 재정비의 시간들은 삶 속에서 우리가 겪는 긴장과 이완, 극적 순간과 고요함을 대변한다. 코트를 배경으로 한 최승준의 작품들은 스코어를 올리는 극적 순간이 아닌, 숨 고르기의 시간에 집중한다. 이는 우리의 삶이 늘 스릴과 성취로 가득 차 있을 수 없음을, 때로는 내면의 조화를 찾아가는 시간 또한 필요함을 말해준다.

작가의 회화는 찰나의 순간을 새로운 의미의 장(field)으로 확장한다. 테니스 코트의 장면들은 단순히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을 지탱하는 스폰서의 로고, 규칙을 집행하는 심판, 긴장감 속에서도 존재하는 고요한 순간은 모두 작가의 회화적 언어로 재구성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선 깊이를 발견한다. 이는 현실과 긴밀히 맞닿은 테니스 코트를 통해 우리의 삶과 존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 인용 : 아트앤컬쳐, 2024.11.24, "최승준 개인전 《Color Field》 개최 > 전시 - 아트앤컬처- 문화예술신문"


롤렉스 코트와 볼보이

딱히 제목이 생각나지도 않을뿐더러 워낙 이그림에서 보이는 광고가 뚜렷하여 나는 이그림을 롤렉스코트로 부르기로 하였다. 앞서 비평가의 설명처럼 엄연히 프로 테니스 경기코트에 등장하는 상업광고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최승준이라는 화가가 꼭 이 개별 브랜드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역시 그림앞에 서는 순간 프로 테니스 세계에서 스폰서의 힘을, 마치 운동이나 세상사에서 거역할 수 없는 필요악 같은 힘을 느끼게 된다.


선수들이 모자부터 신발까지 하얀옷을 입었고 잔디코트인 것으로 보아 영국 윔블던 테니스대회 같다. 정작 내가 이그림에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맨 아래에 실수로 그린 듯한 볼보이다. 그림에 눈코입이 상세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앞뒤로 휘두르는 두 팔과 몸 앞으로 주욱 내민 얼굴, 앞으로 급격히 기운 상체를 봤을때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니는 것 같다. 주인공은 페더러인지 몰라도 나의 원픽은 볼보이!


슬레진저 노랑코트와 여자 선수


여자 테니스 선수를 그린 그림이 많지않은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그림이었다. 이 코트는 유독 코트가 전체 화면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느낌이 든다.

테니스 코트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할 수 있다. 경기는 나 혼자 하는데 심판은 여럿이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코칭도 할 수 없다.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쓸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경기장에 들어선 이상 해내야한다.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코트의 위압감과 혼자 이 코트를 다 누비며 경기를 해내야 하는 선수의 외로움이 와닿는다.


다비도프 코트와 광고

한 세트가 이제 막 끝나거나 선수가 리턴을 준비하는 거 같은 순간이다. .. 클레이코트 혹은 진홍색 하드코트의 색감을 잘 살렸다.


이 그림에선 다비도프라는 광고판이 워낙 선명하여 코트나 선수 혹은 스토리를 찾아보려는 게 무색해진다. 상표나 브랜드에 약간 신경이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편 선수의 실수나 관중의 모습 같은 것을 더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주인공이 다비도프는 아닐텐데 딱히 다른 스토리를 찾기 어렵다.


에비앙 생수와 몽블랑 산

마지막으로 에비앙 생수와 몽블랑 산의 광고판이다. 물론 화가는 에비앙이라는 문구가 다 드러나게 그림을 그렸다. 멀리 보아는 스위스의 몽블랑산의 기개와 위용도 대단하고 여기에 프랑스의 사치품인양 에비양이란 이름을 붙인 에비앙 생수도 멋지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노랑색 N 문구를 살짝 보이게하고 그림의 한쪽 끝에 자리잡은 눈쌓인 크리스마스 구상나무를 중심으로 사진 찍었다. 구상나무 가지에 눈이 뭉툭하게 쌓여 구상나무 잎의 초록빛이 더 생생하게 두드러진다. 몽블랑산을 배경으로 제주 한라산에서 건너가 유럽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구상나무가 정겹게 느껴진다. 참으로 춥고도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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