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좋으면, 속지마세요.
딱히 고정된 테니스클럽이 없다보니 주로 테니스 친구찾기 앱을 통해 테니스 게임을 잡고 이동네 저동네로 떠돌이처럼 다니고있다. 네이버에서 테니스친구찾기앱이나 다른 단체채팅방에도 속해있다.
그중 내가 주로 이용하는 앱은 Smaxh 라는 테니스 게임 파트너찾기 앱인데, 매우 쉽고 화면도 예쁘며 직관적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앱에서는 처음에 자기 별명을 정하게 되어있는데 여러 고수들의 별명을 보며 감탄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늘은 테니스 친구찾기 앱의 귀염뽀짝, 살벌한 별명들을 소개해볼까나...
별명계의 클래식. 일종의 나훈아 계열 별명이라고나 할까. 전국 어디에나 있는 국일관, 5일장 나이트 입구에 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너훈아, 나흔아 형님이 있다. 조옹필, 신수봉, 심쓰봉 같은 이름도 이제는 고전이 되었다. 테니스 챕에서 본 "너덜너덜"도 아마 라파엘 나달에 대한 헌시 같다. 나달을 좇아하다 너덜너덜 해진다는 의미일수도
얼마전 은퇴한 스페인의 전설적 영웅 라파엘 나달의 별명인데, 흙신을 자기 별명으로 했다는건 대단한 자신감 같다. 우리 테린이들은 하드, 흙, 잔디 어디서도 신이 되긴 쉽지 않은데... 감히 흙신이라고 이름을 붙이다니 용기있는 분 같다.
최근에 테니스계를 주름잡는 장신의 선수, 야닉 시거에 대한 오마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임과 아이디어가 참 창의적이다.
테린이란 별명은 많다. 송파동 테린이, 방이동 테린이, 김포 테린이, 서대전 테린이 등 보통 자기 동네 테린이라고 한다. 테린이시절에는 아무리 노력하고 연습해도 도저히 실력이 올라가지 않는것 같다. 한평 남짓한 내방에서 고작 한뼘 방구석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한동안 나아지지 않는것 같다.
내가 들어온 별명 중 가히 원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부정적 의미에서 말이다. 예전 못살던 시절에 집마다 가훈이랍씨며 “보증서지 말자” 라고 써붙이곤 했다. 남의 집 돈이나 사업 보증을 서 우리집이 쫄딱 망한 일이 많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분은 도대체 뭐에 속지말라는 걸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구력이나 실력 같은 것에 많이 속아봐서 그런건가? 한편으로는 결기가, 또 한편으로는 살기도 느껴진다. 내 실력이 일정하지 않을 때는 그날 따라 잘 치기도 하고 못 치기도 하는건데... "속지마세요" 하면 마치 내가 구력을 속인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미숙할때는 ... 자기 실력을 잘 모른다.
테니스 앱에서 오리고기냉면이라는 별명을 들었을때 정말..이건 뭘까? 자기가 좋아하는걸 그냥 쓴걸까? 오리를 닮았나? 그럼 냉면은 뭐고? 테니스앱에 자기이름으로 오리고기 하나 쓰기도 쉽지않은데... 냉면까지? 가히 범접하기 힘든 레베루가 느껴졌다. 실제로 만나보니 아주 매너있고 유쾌하신 분이었는데... 그날 끝까지 두개의 조합의 의미에 대해서는 묻지못했고 기분좋게 헤어진 기억만 남는다.
이 별명도 "속지마세요"류처럼 풋내기들을 기죽이는 힘이 있다. 좋게는 힘이고 나쁘게는 기를 죽인다. 구력 3년이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 그 구력이 "찐"구력일 수도 있고, 레슨부터 시작한게 3년이고 서서히 게임을 하게된지 2년이고, 본격적으로 열심히 한지 1년일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에게 테니스 구력이란게 칼로 무를 자르듯이 명확히 잘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것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럴때 이런 별명 보면 참 무안하다.
살면서 본 가장 기분 좋았던 별명이다. 이런 별명은 흔하지도 않지만, 실제로 만난 그분과 참 잘어울렸다. 밝고 환하게 웃으며 따뜻한 매너로 같이 치는 내내 편안했다. 햇빛이 좋으면 테니스를 치겠지요, 라고 할수도 있고 햇빛이 좋으면 밖에 나가지요, 라고도 할 수 있다. 햇빛이 좋으면 뭐든 할수있고 움추렸던 몸도 펴게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듣는 사람 누구든 웃음을 짓게 하는 이름이었다.
오늘도 햇빛이 좋으면 테니스를 합시다.
날씨가 좋으면 테니스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