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처음으로 운동화가 닳도록 열심히 운동했다.
겨울부터 닳고 터졌는데 매일 더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 안바꾸고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신발이 닳아보기는 처음이라서...
나는 절대적으로도 작았고, 상대적으로도 작았다고 한다. 만삭이 되기전 태어났고, 따라서 태어날 때부터 작았고, 약했다. 두살, 세살 그 나이에 비해서도 워낙 작고 약해서 엄마는 내가 6살때까지 나를 늘상 아기포대기에 싸서 등에 업고다녔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작았다.
당연하지... 절대적으로 내 나이에 비해 작은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클리가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나는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늘상 작고 약한 아이였고 그것이 신체적으로 나를 더 위축시켰다. 몸이 더이상 자라지 않는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엄마는 곧 내가 자랄꺼라며 미리 큰옷을 사주었고 나는 바짓단, 소매를 두번 세번 접어 입었다. 신발도 딱 맞는걸 신어본 적이 없었다. 곧 자랄테니 항상 한 치수 정도 큰걸 신게했다. 늘 남의 옷을 입은듯이 큰옷만 입고 다소 덜컥거리는 신발을 신고다녔다
그러나 나중에 옷이 작아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의 바램대로 바짓단을 푸는 날도 오지않았다. 고등학생일 때 교복 치마도 일부러 큰것을 사고 허릿단을 두단이나 접어 입었는데 3년 내내 단을 풀 일이 없었다. 결국 원래대로의 옷을 입어본 적도 없거니와 치맛단, 바짓단 한번 내려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게 어디 바짓단 탓이랴.. 자라다 만 내 탓이지..
한번은 회사에서 마라톤을 한다는 동료가 안 좋은 신발은 한두달만에 빨리 닳고 그래도 좋은 신발을 신어야 빨리 닳지 않는다고 하는걸 들었다. 들으면서 잘 이해가 안갔다. 신발이 닳기도 하나? 신발을 어디에 문지르는 것도 아닐텐데 왜 닳지? 마라톤신발이 닳기도 닳는구나...
신발이 닳기도 하나?
신발을 어디에 문지르는 것도 아닌데 왜 닳지?
따라서 내가 신은 운동화가 닳고 찢어지는 걸 본건 테니스를 하면서 처음이다. 놀랍고 신기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말 못할 뿌듯함이 몰려들었다. 내가 더 커지거나 자란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움직이니 신발이 닳기도 하는구나.
신발이 닳도록 신체활동이나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보니 이 찢어진 신발을 보면 누가 나에게 “열심히 뛰어다녔음을 인정한다”는 증명서를 받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아직도 운동화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햇빛 좋은 바깥 코트 한켠에 앉아 오래전 엄마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본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딱 손가락 마디 하나 만큼씩 자라길 바라셨을 것이다. 한단 접은 바지단의 너비만큼, 한치수 큰 신발의 1센티 치수만큼, 남의 옷을 빌려입은 것처럼 헐떡거리는 스웨터의 품 만큼...
항상 남보다 큰 옷을 입고 다니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어서 자라 그 남는 공간을 꽉 채우길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더디게 자라는 자식이 어서 자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냥 어린 아이였던 내 마음으로 돌아와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말하고 싶은 결론은 이거다.
아이들은 언제 자랄지, 자라다 멈출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제발 맞는 옷 사주세요..... 그거 얼마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