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방향(2011)

영화 내용 스포일러 포함

by 마법거북이

북촌을 따라 헤매는 남자는 북촌을 향해 가고 있다. 이 문장은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그가 북촌에 도착한 날, 그는 북촌을 향해 가고 있다는 문장은?

이미 북촌에 도착한 자가 하릴없이 북촌을 떠도는 데도 영화의 제목은 북촌방향이다.

'인생은 아픔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 아픔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아픔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위의 말을 따라 하듯, 북촌에 도착한 자에게 북촌은 여전히 도착해야만 할 곳이다.


그가 빠진 무궁, 그곳은 다름 아닌 멜로의 세계다. 멜로의 뜻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해갔지만 최초의 멜로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었다. 주인공 성준은 자기에게 일어난 우연을 신기해하는 보람에게 말한다. 우리가 인위적인 인과를 부여하는 것일 뿐, 세상 모든 일은 단지 우연의 연속일 뿐이라고.


그러나 말과 달리 그의 행동엔 인과가 있다. 지방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그는 오랜만에 온 서울에 우연히 예정에 없던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중 술집에서 만난 학생들과 합석하게 된 그는 학생들에게 자기가 좋은 곳에 데려다주겠다며 학생들을 이끌고 고덕동으로 간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돌변해 자기를 따라 하지 말라며 이유를 알 수 없이 화를 내곤 학생들을 놔둔 채 자리를 뜬다.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찾아간 곳은 헤어진 연인의 집이다. 아마도 그는 처음부터 이곳에 오고 싶었고, 학생들에게 했던 제안은 이곳에 오기 위한 핑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목적을 이룬 그는 이곳에서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그후로 이어지는 시간은 앞선 시간과 구분이 되기도 하면서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반복적이면서 기이한 형태를 띤다.


그는 우연히 만났던 사람을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며 같은 사람들과 같은 술집에 반복해서 찾아가며 때로는 대화가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처럼 완전히 똑같은 반복은 아니다. 차이도 있다. 성준의 선배 영호는 다른 자리에서 성준이 했던 말을 따라 하고, 같은 말을 해도 사람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반복되는 술자리에서 성준은 두 여자를 앞에 두고 작지만 큰 차이를 보인다. 술자리에서 잠시 빠져 나와 담배를 피는 성준은 자신을 따라 나온 보람과는 단지 담배를 주고 받을 뿐이지만 옛 연인 경진을 닮은 술집 주인 예전에겐 먼저 다가가 입을 맞춘다.

이후에 나오는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자 아마도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일 눈이 오는 거리에서 택시를 찾아 어딘가 계속 먼 곳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하나 둘 떠나는 장면에서 제일 먼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보람이 갑자기 화면 밖으로 불쑥 나가버리고, 놀라 보람을 붙잡으러 영호가 뛰쳐 나가고, 이어 술에 잔뜩 취한 중원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면 성준과 예전만이 남는다. 서로를 바라보는 둘, 그후 씬은 곧바로 바뀌어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영호와 성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후에 나오는 상황은 여전히 반복적이지만 앞선 두번의 반복과 달리 이 반복은 이 장면, 분기점이 되는 이 씬에 의해 따로 떨어져 있다.

이 장면 직전, 성준은 보람은 거부하지만 예전에게 먼저 다가가 입을 맞춘다. 그의 이런 선택은 다름 아닌 예전이 옛 연인 경진을 너무나 닮았다는 우연에서 비롯된다. 이 닮음을 앞에 두고, 성준은 경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하룻밤을 보낸 후에는 목적을 이룬 것처럼 여자를 놔두고 떠나 버린다. 그리고 그는 북촌을 영원히 떠나지 못할 것처럼 사진 속에 고정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나 버린다.


그는 왜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 영화 안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기는 어려우나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모호하게 만드는 영화의 방식이 마치 그를 그런 자리로 몰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준은 경진으로부터 문자를 받고 나서 예전에 경진에게 하듯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예전인 이 여자는 갑자기 호칭이 바뀌어 성준을 오빠라고 부르며 알겠다고 답한다. 이 순간 예전은 경진처럼 보이면서 마치 성준이 회상하는, 즉 성준이 다시 재현하는 미래가 아닌 과거의 시간처럼 보이게 한다.

만일 관객이 이 순간 성준이 과거에 옛 연인을 어떻게 도망치듯 떠나보냈는지 그 상황을 목격하는 것이라면,

성준은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옛 연인을 닮은 여자를 만난 우연 속에 예전 일을 회상하는 것이라면, 영화의 마지막에서 성준이 갈 곳을 잃은 것처럼 흔들림을 멈출 줄 모르는 불안한 눈동자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도 오히려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그는 회상에 빠져 있기에 그저 끝없이 북촌에 당도하지 못한 채 북촌을 헤매는 것인가?

반복되는 상황이 핵심이라면 이 상황에 대한 인물의 리액션이 있기 마련, 그러나 성준은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 성준은 반복되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따라 하는 것'에 과민반응을 보였다.


왜 그는 따라 하지 말라고 외쳤는가, 그저 단순히 무언가를 따라 한다는 일이 일반적으로 부정성을 띠기에? 그러나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따라 하지 않고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때로는 과거의 누군가를 따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 자신을 따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따라 함으로서 변할 근거를 마련하기도 한다. 영화 안에서 발화자와 정작 그 발화의 내용을 경험하는 사람이 다른 지점이 그렇다. 우연히 길에서 네 번이나 영화를 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보람이나 그걸 몸으로 겪는 사람은 성준이다. 성준에겐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랑을 앓았던 시기가 있었으나 정작 그걸 언급하는 영호는 현재 그 상황을 본인이 겪는 중이다. 이렇듯 엇나가는 발화와 체험의 서로 다른 대상은 본의 아니게 서로가 서로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에는 의지가 없다. 이들은 그저 본의 아니게 우연에 의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을 뿐이다.


홍상수 영화에는 인물이 졸다가 깨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딱 한 번 나온다. 첫째 날(로 보이는)이 지나면 성준과 영호는 정독 도서관에서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이 씬 이후에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성준이 조는 장면이다. 보통 이렇게 되면 그 앞 장면이 인물의 꿈으로 비치게 되는데, 이 꿈에 의해 첫번째 날과 그 다음 날은 이어지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다. 이로 인해 영화가 순서대로 첫째, 둘째, 셋째 날인지는 사실 명확히 알 수 없다. 시작 부분이 성준이 서울에 도착한 첫 날인 것은 분명해 보이나 그 다음은 셋째 날, 마지막이 둘째 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날짜의 순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성준이 지금 따라 할 위기에 처해 있는 건 자기 자신이 된다는 사실이다. 성준은 말했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왜 이렇게 술을 먹고 그러냐고.

따라서 시간순으로 영화를 헤아린다면 성준은 다짐했지만 실패했고, 우연히 옛 연인을 닮은 여자를 만나 또 다시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모호한 시간의 경계를 생각한다면 그는 아직 방향성을 잃지 않았다. 혹은 그는 아직 방향성을 정하지 않았다. 영화의 시작에 주어진 그의 다짐은 영화의 끝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반복을 넘어서는 극복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에 의해 비롯된다. 우연이란 바꿔 말하면 순간이며 아직 오지 않은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우연이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는 순간, 이 우연을 겪고 난 후로는 과거의 내 행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우연 다음에 오는 결과도 변한다.

우리는 기억의 연속을 선형적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집적된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고, 그 안에서 일상을 이루며 살아간다. 비록 물과 같이 끝없이 흐르는 이 과정 속에서, 기억 속에서 무엇을 빼내 어디에 연결하며 인과를 만들어나가는 건 다분히 인위적인 일이나 우리는 이런 행위를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기 마련이다.

만일 우리의 기억이 폐곡선을 그린다면 세상 모든 일은 인과관계를 가질 수 없는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이러한 기억의 폐곡선으로 인해 반복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이란 때로 실존적이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페이소스는 다시 '우연'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 우연은 시간과 관련을 맺는다. 우리가 흔히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지고 있는 선형적 시간의식으론 인과 없는 우연이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이 우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멜로드라마는 '비록 그 상황과 정서가 핍진성의 모든 범주로부터 벗어나 있고 실제 삶의 어떤 것과도 닮은 구석이라곤 없을지라도', 이런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통해 파토스를 형성하고 관객은 파토스를 통해 현실을 새롭게 보는 힘을 얻는다.

사실 북촌방향에서 성준이 맞이한 상황이란 치매 환자를 생각해보면 현실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이라 치부하기 어려운, 엄연한 인간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 현실이란 다음의 말로 요약된다.


'우리는 모두 궁극적으로 우연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힘에 의해 다스려진다. 우리 모두는 우연의 물결 위를 떠돌아다니는 표류물이다. 멜로드라마가 재현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변의 진리, 즉 인생의 중대사에 있어서의 우연의 연속성과, 인물에 미치는 우연성의 필연적인 영향력이다.'


이리하여 북촌을 따라 헤메는 남자는 북촌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첫문장은 말이 된다. 적어도 이 멜로의 세계에선.


극장전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비치던 홍상수 감독의 시선이 이 영화를 기점으로 또 한 번 달라진다. 마치 우연을 적극 권장하는 듯한 이 영화는 매 작품이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왔던 홍상수 감독이 이런 미묘한 차이로 인물에게 출구 없는 세계를 던져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인간의 페이소스를 들여다 본 최초의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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