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이 떠나간 빈집을 보니 어릴 적 우리 동네서 살다 돌아가신 모팽양반 생각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초가을 어느 날 모팽양반은 우리 집 앞 건너편 산 중턱 참나무에 매달린 큰 항아리만 한 말벌집을 따겠다면서 대나무 간짓대 하나 용용히 들고 벌집을 향해 돌진했다. 모팽양반은 간짓대에 있는 힘을 모아 말벌집에 꽂았다.
퍽하니 소리가 들리기 바로 후 들리는 외마디.
'오메 사람 죽네'
비명과 함께 모팽양반의 절규가 길게 이어졌다.
'오메~'
모팽양반에게 벌집을 급습당한 뒤 벌들은 분노했고 논에서 일하던 우리 식구들에게 까지 성난 말벌 떼들이 달려들었다.
모팽양반은 말벌 떼의 습격에 견디지 못하고 산중턱에서 데굴데굴 굴러 냇가까지 내려왔다.
말벌떼에게 집단 다구리를 당한 모팽양반 얼굴은 흉칙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온몸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말벌 침을 맞았다.
그리고 모팽양반은 며칠 동안 방구들을 벗어나지 못했다.
모팽양반이 말벌집에 용맹하게 간짓대 하나 들고 돌진했던 것은 허리 아픈 모팽떡을 위해서였다.
모팽아짐은 벌써 몇 달째 허리가 안 좋아 방안에서 거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로 부터 들었던 말벌집을 따서 소주에 담가 두었다 마시면 허리병에 좋다는 말이 사단의 화근이었다.
모팽양반의 눈물겨운 사랑의 후과는 참으로 힘겨웠다. 말벌 떼에게 집단 다구리를 당한 뒤 한동안 동네에서 모팽양반 꼴 보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 후 두 분 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들었다. 모팽양반네 집은 두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오랫동안 빈집으로 남겨졌다. 그러다 지금은 서울서 내려온 두 분이 수리해 잘 살고 계신다.
벚꽃나무 가지에 매달린 커다란 말벌집을 보니 추위로 집은 비워졌지만 여전히 말벌 떼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벌들은 뜨거웠던 여름날 융성번영했던 추억을 남긴 채 낙엽과 함께 집을 비웠다.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커다란 말벌집을 보고 한 마디씩 보탠다.
' 말벌집이 허리에 좋단디 따서 술담그제 그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