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동 봄을 그리다(16)
소우에 자취적을 써서 우적동이다. 고향이며 이곳에서 40여 년 가까이 살았다.
소는 승달산의 역사와 연관되는데 천년고찰인 목우암과 연결되어 있다. 목우암에서 소는 심우도의 마음을 뜻하며 그 소가 우적동의 소와 같은 소다.
역사 속의 전설은 이렇다. 목우암을 창건한 원나라의 원명스님 꿈속에서 목우암에서 큰 소가 걸어 나갔는데 그 소의 첫 발자취가 새겨진 마을이 우적동이다.
전설은 역사적 사실과 많이 부합한다.
승달산의 이름도 달도 하다는 불명이다.
승달산의 역사를 아는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쫓아 내가 내린 결론이다.
목우암은 원나라 임천사에서 건너온 원명스님과 그 500 제자들의 달도와 연결된 천년고찰이다. 500 제자는 싯다르타의 500 제자와 같은 규모로 원나라 사람들의 불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승달산의 깊은 불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들이 고려후기 승달산에 들어와 승달산 곳곳에 여러 절을 짓고 득도했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지금은 함평땅인 고막원 돌다리에도 남아있다.
고막원 돌다리는 승달산 고막대사가 만들었다 하는데 그 고막대사가 원명스님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고막원 돌다리의 규모로 볼 때 원나라 스님들의 힘의 크기와 불심이 짐작된다. 불심으로는 고려 임금에 버금가는 큰 불심을 갖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500 제자가 승달산 일원에 여러 사찰과 암자를 지었는데 우적동과 수월동에서 그 고려시대 절터의 흔적을 찾았다. 우적동 수월동 모두 고려시대 때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 수월동은 운중수월의 수월로 원나라의 대승불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도교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추론해 볼 수 있다.
오백제자는 승달산에서 득도하였고 심우도에서 그런 것처럼 다스린 마음 즉 소를 놓아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는 우적동에 첫발을 디뎠던 것이다. 길들였던 마음 즉 목우는 우적동에 놓아졌다.
아마도 옛 시절 마음을 다스린 신선들의 땅이 우적동일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이며 철학이다.
내가 지금껏 추적해 낸 우적동의 이야기다.
불행히도 오백제자의 득도와 그 이후 이야기들은 찾아내지 못했다. 원나라가 고려후기를 지배했지만 아마도 원명과 오백제자는 지배세력의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았던것 같다. 고막원 돌다리는 함평땅과 나주땅을 잇는 주요 길목이다. 다리를 놓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불국정토를 세우기 위함인지 착취와 수탈을 위함인지 그리고 득도 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가 미스터리로 남겨졌다.
오십이 넘어 불경을 아주 조금 공부하면서 싯다르타의 가르침과 자비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싯다르타의 연기와 무아사상은 공부할수록 그 깊음에 감동하고 있다. 우적동은 산세가 빼어나 가만히 있어도 도를 깨우치고자 하는 마음이 떠오르는 보석 같은 마을이다. 나 또한 이곳에서 남은 생동안 내 마음을 길들이려 하니 역사란 게 이렇게 현재와 연결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