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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었다.

우적동 봄을 그리다(17)

by 정영호

우적동 산골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감내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 아이들이 걸어올 수 없으니 태우고 가고 태우고 와야 했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통학시켰다. 지금은 작은놈이 읍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엄마 직장과 가까워 엄마와 함께 출퇴근하고 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살림살이가 너무 궁핍하고 농사로 먹고살아보려 했으니 힘겨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늘 시간에 쫓겨야 했고 삶에 여유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우적동 산골살이가 힘겨움 이면에 보이지 않았던 가치가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많았다. 내가 힘겹게 받아들였던 그 시간들이 도시 사람들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용케도 아빠의 짜증을 잘 견뎌주었다.

음식점이나 편의시설이 멀다 보니 당연하게 집밥을 우선시했고 그런 일상을 함께 나눈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불편함이 불러온 반전이었다.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불편을 통해 행복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것의 소중함을 알 수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단 한 치 앞만 보며 정신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삶이 너무도 절박해서 객관화해서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또 그 누구도 그 불편함이 가치가 지닐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사 일방적인 일이 있을 수 없다. 잃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 지금 잃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 들어온 것이 있다면 반드시 나갈 것이 있다. 무언가 들어온 것이 있다면 반드시 무엇을 내보내야 하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해가 뜨면 어둠이 가시고 비 온 날이 있기에 개인날이 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이 함께했던 지난날의 그 모든 것들을 너무도 아쉬움에 후해하고 있다. 우리에게 최소한 아이들과 함께 할 평범한 노후가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면서 현재를 확정되지 않는 미래를 위해 희생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더 사랑하고 더 아끼고 더 껴안아주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후회된다.


한국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강요하면서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고통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보내버린 고통 속의 현재는 절대 보상받을 수 없다. 지나버린 시간은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살면서 당장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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