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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다시 새겨본다.

우적동 봄을 그리다(15)

by 정영호 Ma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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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상간 시절이 손바닥 뒤짚이듯 바뀌었다. 이틀 전 매서운 눈보라 휘몰아치던 날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오늘 아침은 어제 낮처럼 포근하고 화사하다.

변회라는 대세는 준동 따위로 막을 수 없는 법!

인간사의 시절도 이렇듯 바뀌길 간절히 바랜다. 이런 운명과 같은 반전이 고단한 인생사에서 짧은 휴식처가 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왜 삶이 고통인고? 하면 네가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어남은 축복인가? 고통의 시작점인가?

인간의 생로병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어디에서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인지 어떻게 늙고 병들며 죽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로지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고통이 해소되는 것은 죽음이다.


삶과 죽음을 분리하며 삶만을 인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 곧 해탈이다.


물질만능 시대에 지나친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서로가 서로를 고통의 감옥으로 옥죄이고 있다. 인생의 성공은 물질에 대한 탐욕과 소유욕이 될 수 없다. 죽음은 우리들의 탐욕이 너무도 헛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잠시 몸을 빌어 이 세상을 여행할 뿐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 여기는 착각이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젊은 자식을 앞세우고 죽음이 현실임을 목도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나는 빈털터리 여행자임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사랑하는 내 새끼는 먼저 우리가 왔던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 있고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남은 여행을 마쳐가는 중이다. 지구라는 여행지는 나와 내 가족에게 삶의 본질을 알려주었고 그것에 대한 헛된 욕망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난 과거는 영화와 같으며 확정되지 않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나는 지금에 오로지 현존할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는 어리석음 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현재를 감사하고 현재에 행복하면 된다.


꽃피는 봄날은 꽃지는 봄날로 이어지니 꽃피는 봄날을 붙들 수 없고 내 오늘 지금을 붙들 수 없다. 시간도 인간이 정한 약속일뿐 실존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이대로 지금에 놓여있으면 그만이다.

죽음에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내 생각이다. 사유를 온 우주적으로 넓게 하며 저 깊은 바다와 같이 깊게 하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내 것이며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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