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동 봄을 그리다(34)
보리고개하면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다. 겨울을 거치면서 지난가을 수확했던 쌀을 비롯한 식량이 바닥나고 보리가 여물기만을 기다렸던 시기를 보리고개라 한다.
나의 기억 속에도 보리고개는 없다. 70년대까지 보리고개가 심각했는데 내가 어려서 그 기억을 못 하고 있으며 80년대 이후 나라의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다.
쌀은 한국인에게 주식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민족사에서 쌀이 주식이었던 기간은 40여 년 내외에 그친다. 쌀이 주된 식량에 포함되었지만 보리 밀 콩 수수 조 옥수수 감자 고구마가 모두 주식에 포함되었다. 우리가 잡곡이라 칭하는 모든 식량작물이 주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쌀이 주식으로서 돼지고기에 밀린 상황이다.
결혼 후 농민회 활동에 전념함으로써 삶은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갔는데 2000년대 초 농산물가격은 수입개방이 본격화되면서 만성적인 폭락상황이 지속되었다. 거기에다 농사실력 또한 부족해 농사로 돈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급자족은 필수가 되었다. 돈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식구들 배라도 채우려는 목적으로 농사가 진행되었다.
봄이 되면 우적동 지천에 널린 각종 산나물은 우리 가족의 식탁을 채웠다. 쑥 머위 두릅 엄나무순 고사리 취나물 더덕순 미나리 잔대순 뽕잎 등 산과 들에서 먹을거리를 직접 채취했다. 그리고 그것을 살짝 데쳐 된장에 주로 묻혀 먹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들은 산나물에 익숙하고 그것을 즐긴다. 가난을 통해 얻은 좋은 식습관이다.
봄에는 상추 이외에 재배하는 야채가 필요 없었다. 낫과 가위만 있으면 집 주변 어디서나 우리가 원하는 식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가난했지만 늘 가족이 함께 견뎌냈기에 행복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산나물의 계절이 찾아왔다. 장모님은 매일 들에 나가셔서 쑥 머위 등 요즘 나물을 뜯어오셔 맛난 반찬으로 만들어 주신다.
봄은 입이 호강하는 시절이다. 갖가지 산나물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