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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면 사고 비싸면 판다.

우적동 봄을 그리다(37)

by 정영호

우적동 지명 때문인지 우적동은 소가 잘되는 마을이었다. 그중에서도 소를 키워 큰 이문을 남긴 사람은 아버지였다. 우리 집이 소를 수십 두로 늘린 것은 아마도 86년 1차 한우 소파동으로 기억된다. 전두환이 군부를 동원한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80년대 초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호주에서 야생 사로레를 수입해다 농가에 판매한다. 우리 집에도 네 마리가 들어왔는데 호주에서 수입된 사로레들은 성질이 너무 사나워서 대부분 농가가 극심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호주의 초원을 누비던 사로레라는 종의 소들은 한국에 들여와 대부분 묶여서 사육되는데 성질이 괴팍해서 축사를 부수는 일이 태반이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뛰쳐나간 소들을 찾느라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수입된 야생 사로레들은 잘 크지도 살이 찌지 도 않아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불러왔다. 여기서 촉발된 사건이 88 올림픽을 앞둔 한우 소파동이었다. 소값은 완전히 폭락했다. 송아지 한 마리 10만 원에 이르는 사상 초유의 소파동이 발생했다. 농가들은 거의 소를 내다 버리듯이 팔았다.

아버지는 사로레를 키우다 손해를 보고 판매한 이후 키우던 한우 황소 네 마리를 팔아 10만 대 송아지 60마리를 사들이셨다. 엄청난 도박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가 미쳤다고 흉을 보았다. 60마리가 들어갈 축사가 없다 보니 담뱃잎을 말리던 대밀림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흙바닥에서 소 60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흙바닥 위에 칸막이는 산에서 밤나무 등을 베어다 막았다. 아버지는 배합사료에 의존하지 않고 쇠죽을 끓이고 깔을 베어 소를 키우셨다. 쇠죽을 쑤기 위한 큰 소딴지들이 들어왔다.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 여름에는 풀을 베었고 겨울에는 쇠죽을 끓이거나 쇠죽을 끓일 때 사용할 나무를 했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소들은 임신하고 송아지를 낳았다. 그사이 소값은 폭등했다. kg당 2500원대 소고기값이 만원을 넘었다. 10만 원짜리 송아지들은 6백만 원대의 어미소가 되었다.

아버지의 생각이 적중했다. 싸면 사고 비싸며 팔아야 한다. 아버지는 주변 농부들과 달리 소값이 폭락하고 바닥이 드러나자 소를 사들였다. 그것도 기존 사육두수보다 15배를 늘렸다. 소값이 너무 싸다 보니 전국에서 잡아먹어 없어지는 소가 엄청났다. 몇십만 원이면 큰 소를 잡아먹을 수 있었으니 소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줄어들었다. 단기간에 소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3년도 가지 않아 소값은 폭등했다. 아버지는 배합사료가 아닌 풀로도 버틸 수 있는 암소를 선택했다. 수소는 살이 찌지 않으면 재 가격을 받을 수 없었기에 암소를 선택한 것이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경제 상식이 ‘싸면 사들이고 비싸면 판다’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법칙을 적용하려면 나름 자기 생각이 분명해야 하고 배짱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알지만 비싸면 사고 싸면 내다 판다. 주식이 비싸면 빚을 내서라도 못 사서 안달이고 주식이 싸면 못 팔아서 안달이다.

아버지는 사시는 동안 이런 소파동을 세 차례나 겪으셨고 그때마다 큰 이문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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