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동 봄을 그리다 (36)
탐욕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든다. 탐욕이 생기면 탐욕하는 것만 보일뿐 객관적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격언처럼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도 사람은 식욕이 우선이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
어제 뒷산 소방도로를 따라 운동하는데 길가에 나온 고사리를 꺾다 보니 아름다운 산의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시선은 땅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산벚꽃이 만발한 산은 온갖 봄꽃이 피어 너무도 아름답다. 꽃향기며 새순의 향기로 산은 거대한 향기원이다. 하지만 고사리에 빠진 나는 그 멋진 풍경을 놓치고 말았다.
티벳의 고승 파드마삼바바는 삶과 죽음의 중간세계인 바르도예서 인간이 어떻게 하면 물질적 탐욕을 버리고 광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경전 '사자의 서'를 통해 논한다.
바르도에서 49일 동안 사자에게 빛의 세계를 선택해 해탈할 것을 읽어주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물질적 탐욕의 세상인 어둠 즉 다시 고통의 세계인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억겁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 해탈하기 위해서는 도를 깨우쳐야 하는데 도의 본질은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죽음의 수용이다. 그것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고사리를 꺾을 탐욕조차 다스리지 못하니 도를 깨우친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외운 것이다.
인생은 한낱 영화와 같으니 온갖 부귀영화의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으며 그저 잠시 내 육신이 그것을 사용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