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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Oct 13. 2021

토종흑돼지/토종흙돼지

흙돼지 이야기(1)

흑돼지를 키운 지 십여 년이 흘렀다.

토종흑돼지라 하는데 우리 집 돼지가 종적으로 옛날 조상들이 기르던 토종흑돼지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처음 시작은 흑돼지가 흰돼지에 비해 자연적응력이 우수할 거 같아서 흑돼지로 시작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홍보하기에 차별성이 있어서였다.


 지금은 토종흑돼지 보다 토종흙돼지를 지향하고 있다.

십여 년의 경험 결과 돼지에게 가장 중요한 동물복지의 기준은 흙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유럽에서 동물복지의 기준은 먹이와 환경이다.

 유럽은 GMO 곡물이 첨가된 먹이를 돼지에게 급여하는 것을 동물복지에서 배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좋은 먹이는 것이 동물복지의 우선적 기준이다. 유럽은 돼지를 키우는 먹이와 환경을 홍보해 차별화한다.

 다음으로 돼지가 초원에서 땅을 파며 흙을 먹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동물복지의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밀집사육이 아닌 넓은 공간에서 구속과 폭력이 만들어지는 것을 차단한다.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들은 돼지들이 흙에서 살도록 해준다.


 한국의 동물복지의 기준은 먹이나 환경이 아닌 사육시설이다.

한국에서는 돼지의 분변을 폐기물로 정하고 있다. 복지를 떠나서 모든 돼지들은 폐기물을 발생시키므로 자연과 격리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복지보다 우선하는 것이 폐기물 관리다.

 그래서 돼지가 흙에서 사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킨다.

 동물복지를 위해 축사 바닥에 콘크리트를 써야 하며 옹벽을 쳐서 외부환경과 엄격히 차단시키고 흙 대신 톱밥을 활용하도록 규제한다.


 한국의 동물복지가 이렇게 된 것은 GMO 곡물로 만들어진 배합사료만을 사료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이베리코 흑돼지는 도토리가 사료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조차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돼지는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더러운 가축이 되었다. 먹이와 환경의 변화 없이 동물복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복지논쟁이다.

 한국의 동물복지는 농업적 성격보다는 공장 제조업으로 정의하는 것이 맞을것 같다.

 굳이 농촌에서 돼지를 키울 이유가 없다. 돼지를 키우는 공단을 만들어 방역을 쉽게 하고 환경문제와 민원 문제를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며 지향하는 바와 맞다.


 배합사료 없이 돼지를 키우면서 내린 결론은 원래 돼지가 폐기물을 배설하는 가축이 아니라 사람들이 먹이는 배합사료가 폐기물이라는 것이다.


 돼지에게 배합사료가 아닌 쌀겨나 보리 풀등을 먹이면 돼지의 분변은 폐기물이 되지 않는다. 지독한 냄새도 없고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사육된 돼지의 분변은 농지를 거름지게 만드는 훌륭한 퇴비가 된다.

 돼지에게 필요한 것은 흙과 초원이다. 초원에서 마음껏 땅을 파헤치고 흙을 먹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동물복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토종흑돼지보다 토종흙돼지가 되길 바란다.

 한국에 존재 유무가 불분명한 토종흑돼지를 고수하는 것보다 흙에서 살아가는 흙돼지를 유전적으로 공진화시켜 고유종으로 만드는게 목표다.


 종적으로 토종흑돼지를 키운다 하여도 수입된 배합사료에 의존해 밀집 사육한다면 그것을 굳이 토종흑돼지로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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