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소고기가 서민 고기였던 이유는 소는 풀을 주먹이로 하기에 꼭 양반이 아니어도 사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돼지는 주먹이가 곡물이나 단백질 사료이기에 음식이 남아도는 관청이나 양반집에서만 사육이 가능했다. 조선시대는 지금처럼 식량이 남아돌지 않았다, 특히 곡물은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했기에 농민들이 돼지를 키우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조선시대 돼지를 똥돼지라 부른 연유도 먹이의 부족으로 사람의 똥 또한 주사료로 이용한 것에 연유한다.
돼지 사육이 보편화된 것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보급과 함께 농산물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였다.
우리가 서민 대표음식으로 생각하는 돼지국밥은 역사적인 서민음식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서민음식은 소고기로 만든 육개장 곰탕 내장탕 등이었다.
조선 후기 역사 기록에 의하면 정조시대에 조선에서 도축된 소 숫자가 하루 500여 두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농업 외에 상업과 제조업이 성장하는데 그 결과 소고기 소비량 또한 증가했다.
김홍도가 그린 돼지를 보면 당시 돼지는 작은 멧돼지와 유사하다. 지금처럼 살이 포동포동한 모습이 아니고 체구가 작으며 살이 없었다. 그마저도 경제력이 약한 서민은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만약 지금 값싼 GMO 곡물이 수입되지 않는다면 소와 돼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시대상은 달라졌지만 돼지는 여전히 부의 상징이다. 돼지꿈을 꾸면 복이 올 것으로 여긴다. 5천 년 민족의 역사에서 현대 백여 년은 한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