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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Nov 01. 2021

주룡포 바다를 꿈꾸다.

무안 기행 일곱번째 이야기

이 글은 2021년 7월 무안신안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7월 초 장마가 시작되고 거세게 불어오는 비바람에 강물은 파도로 거칠게 출렁였다. 주룡포에 이르러 폭우를 헤치고 눈앞에 펼쳐진 비경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도 용이 승천할 때 이런 풍경이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거친 비바람 속에 출렁이는 파도를 헤치고 용이 여의주를 물고 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그려졌다. 주룡포는 거센 물살과 공존할 때 그 속살 비경을 보여준다.  

 무안일경 주룡포!  

무안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무안 땅 그 어디에도 주룡포의 비경에 견줄 곳이 없다. 영산강은 하류 주룡포에 이르러 무안 상사바위와 영암 은적산 사이를 지나면서 강폭은 급격이 줄어든다. 430여 미터로 좁아진 강폭을 지나면서 물살은 거칠어지고 적벽을 품은 주룡포는  비경을 만들어낸다.

두령량광장

 

 주룡포에 나덕명 장군은 적벽정을 세우고 임진왜란의 고단했던 상처를 더듬으셨을 것이다. 현재 적벽정은 장군이 세운 뒤 소실되어 최근에 다시 세운 정자다. 두령량광장은 무안군 일로읍 주룡마을과 영암군 학산면 미교마을을 잇는 물길을 지칭하는 말이다. 두령량광장의 이름 속에 그 옛날 조상들의 영산강에 대한 경외감이 느껴진다. 적벽정에서 두령량광장과 영산강 상류를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 굽이치는 강과 함께 용은 주룡포에 살았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 또한 견훤과의 일전을 위해 주룡포를 지나 영산강을 헤쳐 몽탄나루와 파군교로 갔다. 아쉽게도 목포에서 보성으로 가는 철도 다리가 만들어져 장군이 바라보셨을 아름다운 풍경은 사라졌지만 적벽정에서 바라본 비경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복원된 적벽정


 

 무안 땅 주룡포는 주룡나루로 영암 땅에도 함께 존재한다. 영암군 학산면 미교마을 앞 포구의 이름도 주룡나루다. 바다로 연결되었던 강은 하나의 주룡나루로 존재했다. 옛사람들은 뱃길을 통해 삶터를 공유하고 문화를 공유했다. 자동차 문명시대의 강의 의미와 이전 시대의 강의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자동차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강을 단절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자동차 문명 이전 시대의 강은 공존의 터전이었다. 영암과 무안사람들은 주룡나루를 오가며 영암의 독천장과 무안의 일로장을 오가며 삶과 문화를 공유했다. 그리고 주룡포는 대륙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며 일본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영암 미교마을 주룡나루에서 바라본 적벽의 모습은 신비로우며 경외감을 불러왔다. 그 경외감이 상사바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전설로 이어졌을 것이다. 적벽에 대한 경외감은 상사바위라는 이름을 남겼다. 상사바위 적벽 아래로 자전거 통행과 보행을 위한 보행자 다리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머지않아 강에서 보지 않아도 적벽을 가까이 볼 수 있게 된다. 전남의 명소가 될 것이다. 적벽을 품은 주룡포가 왜 무안의 일경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상사바위


 

 1981년 영산강 하구언 공사가 끝나고 주룡포의 바다는 사라졌다. 대신 멈추어선 호수가 생겨났다. 바다에 의지하고 살았을 수많은 사람들은 농민으로 바뀌었다. 게와 맛을 잡던 갯벌은 논으로 바뀌었다. 하구언 공사로 주룡포의 거친 물살이 멈추어 섰고 바다 생물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비바람이 없는 날 주룡포에 나가보면 무언가 하나가 빠진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주룡포의 상징인 거센 물길이 없다. 주룡포는 그렇게 40여 년 세월 동안 바다를 꿈꾸며 잠들어 있었다.  

  

 일로에서 죽산을 지나 청호리에 이르러 남해고속도로 청호 교차로를 지나면 바로 주룡포에 다다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해고속도로를 오갔을 것이지만  주룡포는 지나쳤을 것이다. 무영대교는 알아도 주룡포는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주룡포는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남해고속도로 무안과 영암을 연결하는 무영대교는 영암 미교마을의 역사와 예언을 품고 있다. 미교마을의 원래 이름은 미다리다. 아름다운 다리인데 조상들은 이곳에 언제가 아름다운 다리가 놓일 것을 예언했다. 그리고 주민들은 다리의 이름을 주룡대교로 짓기를 주장했지만 행정은 주룡포의 역사를 외면하고 무영대교로 이름 지었다. 무지의 극치다. 지금이라도 오류를 바로잡아 주룡대교로 이름을 바꾸면 좋겠다.  

 현재 주룡포에는 ‘전망 좋은 곳’이라 표지판이 놓여 있다. 강변을 따라 우비마을 여기저기 옛날 그 바다의 추억이 존재한다. 지금도 우비마을에는 어촌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 옛날 바다에서 잡았던 숭어며 장어 게 맛 짱뚱어는 사라졌지만 대신 호수에 사는 붕어 잉어 민물장어 등을 잡는다고 한다.  

적벽정에서 바라본 주룡포


 

 우비마을에는 김판삼 작가의 못난이 미술관이 있다. 무안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명소다. 못난이 작품을 감상하려는 이들과 자전거 하이킹 족이 쉬어가는 명소다.  

주룡포와 우비마을 못난이 미술관을 잇는 관광문화공간을 조성해 무안의 새로운 명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무안의 위정자들이 지방자치 30여 년 세월 속에 엄청난 재정투자를 통해 가꾸어온 습지 회산백련지가 떠올랐다. 올해도 회산백련지에 수많은 제정지원이 추진되었다. 왜 무엇 때문에 그 습지에 그토록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무안군은 지난 30여 년 동안 회산백련지에 모든 것을 걸면서 수많은 자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행정도 주민도 회산백련지를 극복해야 한다. 지역의 문화자원은 다양성을 담보할 때 풍성해지고 지역민의 자산이 늘어난다. 무안의 위정자들이 회산을 넘어 다양한 문화자원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길 바란다.  

 

못난이 미술관

 멈추어선 포구 주룡포는 바다를 꿈꾼다.  

 멈추어선 강물은 다시 거세게 두령량광장을 헤쳐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바다의 생명이 다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폭우만 쏟아지면 하류로 몰려드는 쓰레기로 강은 몸부림치고 있다. 다시 물길을 열어 바다를 품어 안아야 한다. 주룡포에 다시 상괭이가 떼를 지어 돌아오고 뱀장어가 돌아오는 생명의 바다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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