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된장에 담근 무장아찌는 제일 좋아했던 음식 중 하나였다.
가을 이맘때 어머니는 단무지용 무를 햇빛에 여러 날 말려 전라도 말로 무가 삐들삐들 해지면 이것을 된장에 묻어두셨다. 이듬해 봄에 꺼내서 무채지 썰듯 송송 썰어서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주셨다.
된장은 수개월 동안 무 깊이 파고들어 원재료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가장 한국적인 맛은 느림의 시간이 만들어낸 맛이다.
무장아찌의 첫맛은 깊고 오래된 된장 맛에서 시작되어 말린 무가 주는 쫄깃한 식감으로 귀결되었다. 무에 된장 맛이 서서히 베들어 아주 깊은 맛이 난다. 무에 된장이 파고들어 만들어낸 연갈색이 또한 식욕을 자극한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무장아찌 하나면 밥반찬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또 가끔 계란을 풀어서 가마솥 밥 위에 올려 쪄주셨는데 너무도 맛이 좋았다. 도시락 반찬으로 계란과 함께 찐 무장아찌를 해주시는 날이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결혼 후에도 어머니가 해 주시던 무장아찌가 생각나 몇 번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의 그 맛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좋은 밑반찬이다.
무장아찌 맛이 좋으려면 된장 맛이 좋아야 한다. 결혼 후 매년 직접 된장을 담그고 있다. 다행히 된장 맛이 괜찮다. 20여 년 된장 공부를 해서 이제는 나름의 된장 노하우가 만들어졌다. 올해는 꼭 단무지 무를 말려 무장아찌를 다시 담그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은 옛날의 기억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 조상은 맛을 만들어내는데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빠름이 아닌 느리고 긴 기다림이 우리의 참맛이다. 김치가 그것이며 된장이 그것이다.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