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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Nov 08. 2021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일상

흙돼지 이야기(9)

태어난 지 20여 일 아기돼지들이 젖살이 올라 튼실하다. 녀석들은 엄마 타기 놀이에 열심이다. 겨울이 다가와 기온이 떨어지니 어미의 품을 통해 보온하고 체온을 유지해 나간다.

추워지면 한꺼번에 모여서 체온을 유지하기도 하며 어미의 배 위나 옆으로 모여서 체온을 유지한다.

 우리농장 돼지들의 특징 중 하나는 털이 다르다. 길고 부드러우며 털이 숫자가 많다.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당연한 모습이다.


 밀집사육 농장에서는 어미를 스톨이라는 압사방지 틀에 넣어서 어미가 새끼들을 보호하거나 교감할 수 없다. 새끼들에게는 별도로 보온 등을 켜주어 체온 유지를 한다. 사람들은 농장의 보온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동물복지의미에서 어미와 새끼 사이에 이런 교감은 필요하다.

 

 돼지도 사람도 유년기에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사람과 비교한다면 지금은 이유식을 시작할 단계다. 엄마의 젖을 먹고 조금씩 먹이를 먹기 시작한다. 돼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둥이로 땅을 파고 먹이를 찾는다. 돼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본 행위가 주둥이로 땅파기다.


 앞으로 40여 일 그러니까 태어나서 두 달 동안 어미와 함께 지낸다. 두 달 동안에 소화흡수력이 충분하게 발달된다. 밀집사육 농장에서는 한 달 동안만 젖을 먹인다. 효율성 면에서 젖보다 배합사료를 먹이는 것이 빨리 자라기에 그렇다. 생후 180일이면 체중이 110kg에 도달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반면에 우리 농장에서는 빨라야 1년이고 길게는 1년 6개월 동안 자란다. 시간에서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느리게 천천히 자라는 대신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강하고 고기의 밀도가 매우 높다. 또한 분뇨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폐쇄 스트레스가 없다. 어린 유년시절만큼은 아니어도 돼지들은 제한적으로나마 행복을 누린다.


 10여 년 노력의 소중한 결실은 위기에 처해있다.

정부가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을 이유로 돼지 축사에 개미 한 마리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8대 방역시설 의무화를 법으로 강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돼지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거나 햇빛을 쏘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일상이 지켜지려면 소비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농장같은 농장은 전국적으로 몇되지 않기에 언제든 정부가 맘만 먹으면 문을 닫게 된다. 소비자인 국민이 잘못된 축산정책을 바꿀것을 요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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