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폭염과 여름 가뭄 그리고 사상초유의 가을장마 속에서도 들녘의 벼가 이삭을 펴 올리고 알곡을 맺고 있다. 폭염 속에서도 한국의 늦여름 들녘은 짙은 녹빛이 절정에 달해 있다. 벼가 만들어내는 들녘 풍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일경이라 본다. 벼를 단순하게 식량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들녘의 벼는 소중한 경관자원이며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는 도구이자 여름 폭염의 열을 식히는 절대적 수단이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남긴 교훈 하나는 농업의 생태적인 가치이다. 이상기후에 언론은 물가 걱정이 태산이지만 우리 사회가 정작 고민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는 이상기후로 인한 식량대란이다. 그동안 농업을 단순하게 교역적 가치로만 환산해 홀대해온 농정당국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여름이다. 농업의 생태적 가치와 식량안보를 바탕으로 직불제도 조정이 불가피하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던 동무들과 함께 식사 전에 불렀던 노래가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육류 소비량 증가와 식생활 변화로 국민들 쌀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밥은 하늘은 커녕 음식중에서 가장 홀대를 받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 가장 흔하고 하찮은 것이 우리네 밥이며 쌀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밥을 하늘이라 여기며 언제나 밥을 놓아두고 신께 감사와 축원의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들은 밥 짓기 전 부엌 신께 밥 즉 하늘을 지켜달라고 인사를 올렸다. 밥은 하는 게 아니고 짓는다 하였다. 조상들에게 밥은 생명이며 하늘이다. 또 그렇게 존귀하게 대했다.
살아가면서 내가 농부로서 밥을 어찌 대해 왔는지 고민해 보았다. 나 또한 한국 사회 전반에서 취급되는 하찮은 스뎅 밥그릇의 내용물 정도로 밥을 취급해오지 않았는지? 반성했다.
내친김에 몽탄에서 공방을 운영하시는 형님에게 우리 가족이 사용할 밥그릇 국그릇을 주문했다. 작가가 우리 가족을 위해 만든 그것도 전통식으로 장작 가마로 만든 분청사기다.
기성 공장 도자기에 비하면 값은 비싸지만 가치로 환산하면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밥을 어찌 대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두 딸도 나중에 부모를 따라 밥을 존귀하게 여길 것이다.
쌀이 남아돌아 생산량을 강제적으로 줄이는 쌀 생산조정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산업화에 밀려 벼가 심어져야 할 소중한 자산인 논이라는 농토는 매해 막대하게 훼손되고 있다. 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밥에 대한 태도를 바로잡는 것이라 본다. 아이들에게 벼농사 체험과 교육을 통해 밥을 제대로 가르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밥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삶의 화두는 삶과 주장의 일치다! 삶을 고치지 못하는 주장은 없어질 폐단이다. 말로는 쌀 수입 개방을 반대하면서 정작 우리는 밥을 어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