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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종 Apr 12. 2022

생명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럴거다 

2009년 옥상에서 길렀던 부추, 고추, 방울토마토


책을 읽고 가슴이 설레서 잠들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마음으로 읽었으나 몸이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슴이 벌렁거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헨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도 그 중의 한 권이다. 스스로의 노동으로 텃밭에서 자신의 먹거리를 해결하며 최대한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자족적이고 사색적인 삶을 살았던 그들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산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유전자에 각인된 농사 본능이 살아나 서울 사무실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이 마흔의 일이었다. 사무실에는 바질과 로켓 샐러드를, 옥상에는 방울토마토와 고추, 가지와 고구마를, 사무실 옆 화단에는 케일과 쑥갓, 콩과 고구마 등을 심었다. 


한알의 씨앗이 모종이 되고 제대로 된 채소로 자라기까지 정말 많은 고비들이 있다. 사무실 창가에 내놓은 바질 싹은 한 번의 소나기에도 뿌리가 뽑히고 뒤집히기 일쑤다. 이 어린싹들에게는 태풍이 따로 없는 거다. 뿌리가 얕으면 작은 비바람에 쉽게 흔들릴 뿐 아니라 아예 뿌리까지 뽑혀버리니까.  


옥상의 토마토와 고추도 마찬가지다. 바빠서 자주 못 들여다보고 물을 못 주면 쉽사리 시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물을 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생기를 되찾는다. 하루는 무슨 일인지 아이들이 일제히 말라죽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냥 포기해 버릴까, 살아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뿌리를 묻어주고, 잎을 털어주고 물을 줬다. 


그런데 아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질은 바질대로 그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토마토와 고추, 가지, 콩 등이 그 결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생명은 그렇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다. 그렇게 살아서, 꽃도 피고, 향도 풍기고, 열매도 맺는다. 누가 봐줘서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다. 오직 살아가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 생명의 몫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왠지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직장생활도 어렵고, 가사와 육아도 만만치 않다.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주위를 돌아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일이 많은 사람은 많아서, 일이 없는 사람은 없어서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우리도 생명이라 그렇다.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생명력의 신비로 없던 힘도 불러일으켜서 희망으로 오늘 이 순간도 살아내자.  


같은 해 흑석동 사무실에서 키웠던 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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