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C에 있는 동안 어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고작 생활비 천만원을 가지고 시작한 박사전과정(Pre-Doctral Fellow) 연수생이었으니 목돈이 드는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아시안센터에 연구원 티오가 있다고 해서 지원을 했는데, 지원을 할 때에는 박사전과정이나 포닥이 되면 연구비가 지원되는 줄 알았다. 연수생으로 선정되고 보니 학교에서 주는 건, 사무실에 비치된 책상을 쓸 수 있는 권한, 도서관 패스,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초대장, 기숙사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 등이었다. 예산을 생각하지 않고 지원을 했다가 갑자기 돈이 필요해져서 어떻게 어떻게 생활비 명목으로 천만원 정도를 가까운 지인과 가족, 선생님들께서 지원을 해주셨는데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러니 돈 안 쓰는 연수를 알뜰히 해보는 수 밖에. 거기다 제일 중요한 미션은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는 것. 연내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지 않으면 박사학위 유효시한인 10년을 넘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현지인들이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캐나다니까 현지인들은 영어를 쓸 것이고, 교실 밖 영어를 배우기에는 그만한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 명상센터로 마음을 정했다. 그 중에서도 일본 조동종 계열의 마운틴 레인 젠도(Mountain Rain Zendo). 이스트 밴쿠버 쪽 낡은 주택가에 선방이 있었다. 서양에서는 불교가 비주류이다보니, 영세했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명상수업이 있어서 꾸준히 다녔다. 놀란 건 현지인들이 잘 굽혀지지도 않는 다리로 시작하면 2시간씩 한 자리에 앉아 좌선을 한다는 것이었다. 조동종은 좌선을 많이 한다고 들었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2시간이었다. 선방에 가면 영어로 된 간략한 발원문과 반야심경 등으로 간단한 시작의례를 하고, 1시간 좌선을 한 후 자기 자리에 일어나 5분 정도 걷기를 한다. 다리도 풀고, 잠도 쫓고, 움직이면서도 마음의 동요가 없는지 알아차리며 행선을 하는 것이다. 5분이 지나면 땡 하는 종소리와 함께 다시 자리에 앉아 40분 정도 좌선을 한다. 좌선이 끝나면 조용히, 한 마디 말 없이, 찻잔이 건네지고, 조금 있으면 큰 주전자에 차가 나온다. 각자 찻잔에 차를 따르고 고요 속에 차를 음미한다. 경우에 따라 법담을 나누는 경우가 있지만 그냥 차를 마신 후 자연스럽게 끝나기도 한다.
이렇게 명상을 할 때는 말없이 의식과 좌선, 행선, 차마시기로 2시간이 이어졌다. 법회는 따로 있었다. 그 때에는 스님 두 분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했다. 한번은 법회를 참석했는데 남자 스님인 마이클이 자꾸 헝그리 고스트, 헝그리 고스트를 언급했다. 헝그리 고스트라고 하면 배고픈 귀신이라는 이야기인데 앞 뒤 내용을 잘 못알아듣는 채로 헝그리 고스트만 들리니 의아하기도 했다. 설교 시간에 왜 저렇게 배고픈 귀신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거지. 영어가 좀 잘 들리게 될 때쯤에야 그 말이 한국말로 아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귀는 배고픈 귀신 맞다. 배가 산처럼 큰 데 목구멍은 바늘처럼 가늘어서 늘 배고픔의 고통을 당한다고 여겨지는 육도 윤회 중인 중생의 한 상태이다. 육도 윤회 상에 나오는 배고픈 귀신을 캐나다 밴쿠버에서 현지인의 입을 통해 들으니 신기했다. 스님의 말씀인 즉, 육도 윤회가 아니라도 살면서 자꾸 더, 더, 더 하면서 만족하지 못하면 배고픈 귀신이라는 거다. 아귀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숨쉬는 아귀를 말하고 있는 거였다. 그런 시각에서 현대인들은 배고픈 귀신들이 많다. 늘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 명예, 지식, 소유물을 기대하며 배고픔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센터에는 마이클 말고도 케이트라고 하는 여자 스님이 있었다. 처음에 머리 깎은 남자스님만 스님이고, 케이트는 경력이 많은 여자 신도인 줄 알았다. 서양이라 승복이나 법복이 격식을 갖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간단히 법락만 두르기도 하고 편하게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후에 알고보니 케이트도 스님이었다. 두 스님이 마운틴 레인 젠도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스님이 공평하게 역할을 나누어서 좌선이나 법회가 원할하게 굴러가도록 살피고 이끌었다.
하루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선방 문이 잠겨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청바지에 검정 티셔츠를 입고 청자켓을 입은 모습으로 스님들이 도착했다. 스님들이 청바지 입은 모습은 처음 봤다. 깜짝 놀랐다. 아니, 스님들이 청바지에 청자켓이라니. 살짝 문화적 충격이 왔다. 평소에는 시작 시간에 딱 맞게 도착을 해서 문도 열려있고, 법당도 앉으면 바로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청바지에 청자켓 입은 스님 모습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캐나다. 스님들이 평소에 스님 옷을 입기에는 문화적인 불편함도 예측이 되었다. 예전에 서양에서는 불교 스님이 되는 것을 게으른 사람처럼 생각하는 면도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자기가 노력해서 자기 삶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스님이 되어 공동체에 들어가서 생계활동을 하지 않고 기부에 의해 살아가는 것을 구걸하는 삶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러고보니 캐나다에서 스님 생활하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저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 생활할 때에는 자기 신분이나 직업을 옷으로 눈에 띄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공평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잠시 재미있는 생각도 해보았다. 의사나 판사 등 평소 유니폼을 입는 분들도 모두 자기 직업을 나타내는 복장으로 일상생활을 한다면? 아니, 모든 유니폼을 입는 분들이 그 옷으로 일상생활을 한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나아가니 오히려 저 분들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양에서야 워낙 문화적인 관념이 있으니 그럴 수 없다하더라도 서양에서는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뒷날 또 한번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어느 정도 친해졌을 무렵, 두 분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또 다른 센터처럼 오픈을 했다. 젠도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밴쿠버 외곽에 자리한 새 보금자리에 초대를 받아 가보니 두 분이 함께 살고 있었고, 알고 보니 부부였다.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아니 두 분이 부부인 줄 나만 몰랐나? 부부여도 스님 생활이 가능하네? 사실 나만 몰랐다. 일본 불교 조동종은 스님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스님이라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건 한국에서, 그것도 조계종 스님과 원불교 여자교무에게만 통용되는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스님 생활을 하는 것이 낯설기도 했지만, 장점도 많아 보였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적절하고 조화롭게 젠도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두 사람이 모두 스님 생활을 하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서양에서 불교는 주류가 아니다보니, 신도수도 많지 않고, 보시 문화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며 적절한 역할분담으로 남녀가 평등하게 수행과 교화를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와 닿았다.
나중에 마운틴 레인 젠도가 속하는 일본 조동종의 미국 본산에 가까운 샌프란시스코 선센터 선원장님이 오셨을 땐 결혼한 스님의 장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1박 2일간의 리트릿 동안 선원장이신 스님의 법문 내내 남편으로서, 할아버지로서의 스님이 일상생활에서 건져낸 수많은 아름다운 예화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선원장님을 만나러 왔다. 부부관계, 육아문제 등 일상생활 속 어려움을 결혼 생활 속에서 명상과 작은 깨달음으로 풀어가는 스님의 살아있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넓고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몇년 전 밴쿠버에서 1달을 지내는 시간이 있었다. 알고보니 친구집 가까이에 마운틴레인젠도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건물이 좋았다. 알고보니 전에 운영하던 선방에서 마운틴레인젠도와 공간을 같이 사용하기로 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선방에 참여하고 케이트와 마이클을 찾았으나 외부로 출장을 가서 만나지는 못하고 왔다. 프로그램은 예전과 거의 동일했다. 노스텔지아라고 했던가. 예전 생각이 났다. 30대에 다녔던 선방을 50대에 다시 가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흐를지도 몰랐고, 서양인들이 뭘 안다고 이렇게 2시간씩 쭈그리고 앉아 명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인연이 아니고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묘한 심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