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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레빠의 마하무드라적 삶과 그 수행법

by 은종


1. 밀라레빠의 삶 자체가 ‘마하무드라 교과서’인 이유


밀라레빠는 이론부터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철저한 업장(惡業) 철저한 참회 완전한 헌신 마하무드라의 완전한 안주까지

삶 전체로 마하무드라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십만송은 단순한 전기(傳記)가 아니라,

그가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과 주고받은 **“노래(도하, 곡송)”**를 통해

마음의 본성, 업, 공성, 자비, 수행의 길을 드러낸 기록입니다.


밀라레빠의 삶은 크게 네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막대한 악업을 지은 존재로서의 출발

– 부모의 재산을 빼앗기고, 원한으로 가득 차서 흑마법을 배워

많은 사람을 죽음과 파멸로 몰아넣은 청년기.

2. 마르파 스승에게 철저히 부서지는 제자 시기

– 탑을 짓고 무너뜨리는 가혹한 시험, 완전한 자아 붕괴.

3. 산속에서의 극도의 고행과 관행(觀行)

– 동굴에서 쏟아붓는 망상, 고통, 공포,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을 붙잡고 수행하는 시기.

4. 자유인으로서 제자와 중생에게 노래로 법을 전하는 시기

– 마하무드라를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삶·노래·만남 속에서 드러내는 시기.


이 흐름 전체가 마하무드라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어떤 업을 지었든, 그 마음의 본성을 바로 보면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2. 마하무드라적인 삶 – 밀라레빠가 보여준 네 가지 특징


(1) 업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삶


십만송에서 밀라레빠는 자기 업을 숨기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저 사람은 마법으로 사람을 죽인 자”라고 할 때도,

그는 변명하거나 도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래로 이렇게 고백합니다(내용 요지):


“나는 과거에 큰 악업을 지은 자이니,

그 과보를 피하려 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정각(正覺)을 향한 수행으로 돌이킬 뿐이다.”


마하무드라적인 삶은 자기 이야기에서 도망치지 않는 삶입니다.

마음의 본성을 본다는 것은

자기 과거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지탱하고 있던 집착과 ‘나’라는 실체감이

비어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밀라레빠는 업을 지웠다기보다,

업을 지탱하던 ‘나’의 실체가 사라진 자리를 보여줍니다.



(2) 스승과 가르침에 대한 철저한 헌신


밀라레빠의 마하무드라는 독학으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마르파 롯사와라는 스승에게 철저히 부서지고, 복원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십만송 곳곳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요지):


“나의 모든 깨달음은 스승 마르파의 가르침 덕분이다.

내가 한 것은 다만 의심 없이 따르고 수행한 것뿐이다.”


마하무드라에서 ‘스승’은 단지 외형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마음의 본성을 비추어주는 거울입니다.


마르파는 밀라레빠에게 끝없이 탑을 쌓게 하고,

또 허물게 하며, 모욕과 냉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밀라레빠 안의 죄책감·원한·자기연민·자기중심성을

완전히 드러나게 하여, 결국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마하무드라적인 삶에서

“스승에 대한 헌신”이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기 집착을 “비워내는 관계”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3) 산과 동굴에서의 고독 – 외로운 수행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에 온전히 기댄 삶


밀라레빠는 산과 동굴에서 혼자 지내며

거친 보리풀 죽을 먹고, 옷 한 벌만 입고 지내는 수행을 오래 합니다.

십만송에는 이런 내용의 노래가 반복해 등장합니다(요지):


“사람들은 나를 불쌍하다 하지만

나는 산과 하늘, 바람과 함께 사는 이 삶이 가장 기쁘다.

세상 사람들은 집과 재산을 지키느라 고통받지만

나는 빈손으로도 두려움이 없다.

마음의 본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부요(富饒)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외로움이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의 표현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마하무드라적인 삶은

외형적으로는 고독해 보일 수 있지만,

내적으로는 모든 존재와 깊이 연결된 삶입니다.


혼자 앉아 있어도

하늘·산·바람·동물·나무·중생 전체를 향해

자비의 마음과 지혜의 눈으로 함께합니다.



(4) 노래로 법을 전하는 삶 – 깨달음은 언어이면서 언어를 초월한다


십만송의 특징은,

밀라레빠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상황에 맞춰 즉흥적인 노래로 법을 전했다는 점입니다.


제자가 질문하면 노래,

마을 사람이 비난하면 노래,

의심하는 이에게도 노래,

산과 바람을 향해서도 노래.


이 노래들은

논문 형식의 이론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에서 흘러나온 즉흥적 표현입니다.


마하무드라적인 삶에서

지혜는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마음과 상황을 정확히 비추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은종님이 말하는

“Insight + Practice”의 Insight 부분을

그대로 살아낸 셈입니다.



3. 밀라레빠의 마하무드라 수행법 – 십만송에 드러난 핵심 요소


밀라레빠의 수행은

체계적인 교과서보다는

노래와 에피소드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마하무드라 수행의 중요한 축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1) 출가와 출리 – 세속의 집착을 기초부터 흔든다


밀라레빠는 집과 재산, 관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구조에서 벗어나

마음 하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마하무드라에서 중요한 첫 단계는

외적인 의미의 출가뿐 아니라,

내적인 출리(出離)심,

즉 “이대로는 안 되겠다, 본질을 알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십만송 곳곳에서 그는

세속적 삶의 무상함과 고통을 노래하며,

**“이 삶을 본질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을 표현합니다.



(2) 참회와 정렬 – 과거의 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밀라레빠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지탄받을 때도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업에 대한 깊은 참회와 통찰을 노래합니다.


참회는 단지 “미안합니다”의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나’라고 믿어온 자아 구조 전체를 내려놓는 작업입니다.


마하무드라 수행에서

마음의 본성을 보기 위해서는

그 본성을 가리고 있는

죄책감·원한·분노·집착을 정면으로 보아야 합니다.


밀라레빠의 참회는

자기비하가 아니라,

업의 허망함을 볼 수 있는 눈을 여는 과정입니다.



(3)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 없이 받아서 수행하기


마르파는 단지 기법을 가르친 스승이 아니라,

마하무드라의 살아있는 구현체였습니다.


밀라레빠는 스승의 가혹한 시험 속에서

수없이 상처받고, 도망치고 싶고,

자기를 포기하고 싶어하는 순간을 통과하면서도

결국 이렇게 결심합니다(요지):


“이 생에서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스승의 가르침을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마하무드라 수행에서

‘스승에 대한 신뢰’는

마음의 본성에 대한 신뢰와 연결됩니다.

스승을 신뢰한다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이미 있는 본성을 신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4) 좌선 – 산과 동굴에서의 꾸준한 관행


밀라레빠는 산속 동굴에서

몸과 마음을 쏟아부어 좌선합니다.


그의 노래에는

좌선 중에 일어나는 온갖 망상, 두려움, 외로움, 유혹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마르파에게 배운 가르침,

즉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 배경의 알아차림 자리에서 쉬는 마하무드라 수행을 계속합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요지):


“생각을 없애려 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오게 두니

어느 순간, 그 모든 생각이

본래 비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마하무드라의 직접 관행입니다.



(5) 일상과 만남 속에서의 마하무드라 – 십만송의 노래들


흥미로운 점은,

밀라레빠가 동굴에서만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을 사람, 제자, 수행자, 상인, 사냥꾼, 농부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고민과 무지, 업식, 집착에 맞게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이 노래들이 바로

마하무드라가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한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노래 하나가

그 사람의 업, 집착, 가능성에 정확히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본성을 본 마음이 현실을 비추는 지혜로운 응답입니다.



4. 마하무드라적인 삶 – 은종님의 길과 연결해 본다면


밀라레빠의 마하무드라적인 삶은

은종님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도 깊이 겹칩니다.

• 과거의 삶 전체를 껴안고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온 길

• 기존 제도와 역할에서 나와

스스로의 삶과 수행을 새롭게 정의해온 과정

• 요가와 명상을 통해 쁘라나를 열고,

마하무드라를 통해 마음의 본성을 보고자 하는 방향

• 글쓰기와 말(강의)을 통해

사람들의 고통과 질문에 응답하고자 하는 움직임


이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적 밀라레빠적인 삶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밀라레빠의 십만송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런 메시지 하나로 모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든,

이 순간 마음의 본성을 향해 돌아서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삶 전체는 마하무드라의 길이 될 수 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밀라레빠의 마하무드라적인 삶은,

업과 고통에서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스승의 가르침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산과 동굴에서 마음의 본성을 직접 보고,

그 깨달음을 노래와 만남으로 흘려보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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