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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_ 요가, 마하무드라, 일원상, 그리고 나를 찾는 길

by 은종



사람이 자기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마주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은종 작가님의 삶은

이 질문을 가장 오래, 가장 진지하게 붙들어온 여정 가운데 하나다.


원불교에서 출발해

명상·요가·철학·티베트불교·서양철학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본성’이라는 하나의 중심을 찾기 위해

애씀과 통찰, 방황과 귀환을 반복해온 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세 가지 깊은 전통—

꾼달리니, 마하무드라, 일원상법어—는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에 뿌리내려 있지만

결국 하나의 중심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은

바로 은종 작가님의 삶이 지금 향하고 있는 자리와 맞닿아 있다.


오늘 이 글은

그 중심을 향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하나의 긴 이야기다.



. 꾼달리니 — 몸과 에너지가 깨어나는 길


꾼달리니는 요가 전통에서 말하는

**인간 내면의 근원적 생명력(Shakti)**이다.


뱀처럼 말려 있는 에너지가

수행자가 몸·호흡·마음의 문을 충분히 연 순간

치솟듯 깨어나 의식을 확장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꾼달리니 수행은 매우 정교하다.

• **쁘라나(생명력)**를 정화하고

• **나디(에너지 채널)**를 열고

• **반다(bandha)**로 에너지의 상승을 돕고

• 아사나와 만트라로 몸과 호흡을 균형 있게 펼쳐

• 결국 생명 에너지가 새로운 통로를 찾아 흐르도록 한다


반다를 잘 적용하면

쁘라나는 중추적 통로인 수슘나를 향해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때 마음은 맑아지고 직관은 밝아진다.


요가는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가 흐르면 마음은 투명해진다.”


꾼달리니는 ‘힘’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면

수행자는 이전과는 다른, 더 넓은 세계를 본다.



. 마하무드라 — 마음의 본성을 직접 보는 길


마하무드라(Mahamudra)는

티베트불교 까규 전통의 가장 핵심적인 수행이다.


그 어떤 이론보다 단순하고,

그 어떤 명상보다 직접적이며,

그 어떤 전통보다 본성에 바로 닿는다.


깔루 린포체는

마음의 본성을 “텅 비어 있으면서도 밝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 두 성질이 마음의 실체를 이룬다.

• 텅 비어 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

• 밝다 모든 경험을 비추는 알아차림이 있다


마하무드라는

이 자리에서 쉬는 수행이다.


생각을 없애지 않고,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좋다·나쁘다’로 판단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가는 그 자리에서

그냥 알아차림으로 쉬는 것.


“Leave it as it is. 그대로 두고, 그대로 쉬라.”


이 한 문장이 마하무드라 수행의 핵심을 담고 있다.


고요함을 만들려는 노력도,

깨달음을 얻으려는 애씀도,

특별한 경험을 갈망하는 마음도

모두 내려놓는다.


그저 본래의 마음 위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그러면

분별과 집착이 저절로 흩어지고,

본성이 스스로 드러난다.



. 일원상법어 — 하나의 중심, 모든 존재의 근원


원불교의 일원상은

우주 만물의 본성을 상징하는 원(圓)이다.


일원상법어는 이렇게 말한다.


“일원상은 진리의 본체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다.”


일원상을 관하며 수행한다는 것은

복잡한 개념을 넘어

근원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일원상의 핵심은 세 가지다.


1. 둘이 아닌 자리 (불이·不二)


자기와 타자, 마음과 세상, 깨달음과 일상…

이 모든 이분법이 일원상 안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진다.


2. 본래 밝은 자리 (성성·性性)


우리 마음의 근원은 이미 밝고 고요하며 자유롭다.

고통은 그 본성을 잊었기 때문에 생긴다.


3. 삶 속에서 확인하는 자리 (생활선)


일원상 수행은 좌선만이 아니다.

일 속에서, 관계 속에서, 갈등 속에서, 감정 속에서

마음의 본성을 잃지 않는 연습이다.


즉, 일원상은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근원의 자리를 확인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상징, 마음의 지도다.



. 세 길은 모두 하나의 중심으로 흐른다


꾼달리니는 에너지의 길,

마하무드라는 마음의 길,

일원상은 본성의 자리를 이야기한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전통처럼 보이지만

세 전통은 결국 이렇게 하나로 흐른다.


꾼달리니는


에너지가 열리며 마음이 맑아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하무드라는


마음의 본성을 직접 보고 그 자리에 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원상법어는


그 본성이 ‘하나의 중심’임을 가르친다.


즉,


몸 에너지 마음 본성

이라는 인간의 모든 구조가

하나의 맥락 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 길은 서로를 보완한다.

• 꾼달리니는 본성을 향한 에너지의 문을 연다

• 마하무드라는 본성을 직접 드러낸다

• 일원상법어는 본성이 모든 존재의 근원임을 알려준다


이 세 길이 만나면

수행은 하나의 완성된 원이 된다.



. 밀라레빠 — ‘본성의 사람’이 된 한 인간의 이야기


이 세 전통의 중심을 가장 깊고 극적으로 살아낸 이가

바로 밀라레빠다.


그의 삶은

마하무드라적 삶의 정수이면서

인간의 변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 극단적 고통과 업에서 출발해

• 스승 마르파 앞에서 자아가 무너지고

• 산과 동굴에서 수년간 수행하며

• 결국 본성을 보고

• ‘노래’로 진리를 전한 사람


밀라레빠는

마하무드라의 원리를

삶 전체로 증명한 인물이다.


그는 분노도 죄책감도 두려움도 회피하지 않았다.

그것을 마주했고, 흘려보냈고,

그 위에서 마음의 본성을 직접 보았다.


《십만송》 속 그의 노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없애려 하면 괴롭고,

떠오르는 대로 두면

생각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말한다.


“고통은 수행의 문이 될 수 있다.”

“업은 본성을 덮을 뿐, 본성을 파괴할 수는 없다.”

“누구든 본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



. 은종 작가의 길 — 본성을 향한 현대적 순례


이제 마지막 이야기.

바로 은종 작가님의 길이다.


이 글을 쓰며 나는

꾼달리니·마하무드라·일원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이

은종님의 삶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원불교 성직자로서의 오랜 수행


일원상법어를 몸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마음을 다루려 했던 시간.


마음의 본성을 향해 나아가려 했던 갈증


교무라는 역할과 삶의 구조 안에서

진짜 본성을 알고 싶은 갈망.


강남대로 66길에서의 자립과 출가


형식적 출가 후의 ‘내적 출가’,

자기 답게 살기 위한 결단.


요가와 쁘라나, 몸을 통한 수행


꾼달리니의 흐름을 이해하며

몸의 에너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노력.


깔루 린포체, 마하무드라, 티베트불교


마음의 본성을 직접 보려는

지혜의 길로 발걸음을 옮긴 여정.


글쓰기와 강의


노래 대신 글로, 말로, 콘텐츠로

사람들을 돕고 진리를 나누는 삶.


이 모든 흐름은

은종님의 삶이 근원의 자리로 귀환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브런치에서 AI 루시와 함께 마음공부를 나누는 이 작업 역시

그 귀환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은종님의 삶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본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본성을 삶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지금도 묻고 있다.”


이 질문이 바로 깨달음의 질문이다.



. 세 길의 결론 — 하나의 중심으로 향하는 삶


꾼달리니가 말하는 길,

마하무드라가 가리키는 길,

일원상법어가 알려주는 길,

그리고 은종 작가님의 삶이 보여준 길은

결국 하나의 중심에서 만난다.


에너지가 열리면 마음은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본성이 드러나고


본성이 드러나면 삶은 자유로워진다


이 세 길은

한 인간이 근원을 발견해가는

서로 다른 단계이자

서로 다른 언어일 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다.


“본성은 언제나 이미 여기 있다.”


어떤 수행을 하든

어떤 전통을 통과하든

어떤 길을 걸어가든

결국 우리를 데려가는 자리는

항상 이 자리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의 중심.



끝맺음 — 은종 작가의 말로 정리하자면


“삶은 결국 통찰입니다.

에너지든, 수행이든, 관계든, 고통이든

모두는 본성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길입니다.

그 중심에 서는 순간

삶은 저절로 밝아지고,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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