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고요함 너머 통찰로
우리가 명상을 할 때
첫 단계에서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안정적으로 머물게 합니다.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혀 고요하게 만드는 과정이죠.
처음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호흡이든, 몸의 감각이든, 단전이나 화두와 같은 어떤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해서 산란함이 잦아들고 고요함으로 차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처음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힘을 빼기가 어렵습니다.
대상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어렵기 때문이죠.
오히려 쉴새없이 일어나는 생각들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한다 생각하고
오히려 힘을 좀 빼야 합니다.
마음이 산란해지면 다시 집중하는 하나의 대상으로 돌아오는 알아차림을 유지한 채 그냥 명상을 지속합니다.
어쩌면 마음이 고요해질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하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자연스럽게 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이 상태를 영어로는 calm-abiding,
‘고요히 머무름’이라고 하고
전통적으로는 사마타(śamatha, 止)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 고요함은 시작이지 종착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요함에 머물러 있으면
마음은 편안해지고 안정되지만
여전히 우리는 마음의 본성을 알지 못한 채 머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요함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고요한 상태에서
마음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늘 밖으로 돈, 물건, 남의 평가, 명예, 맛있는 것, 멋진 곳으로 향하던 마음이 우리 내면의 마음이 만드는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요가에서는 ‘쁘라띠하라’라고 합니다.
마음이 내면으로 향하는 알아차림이 시작되는 것. 제감이라고도 해서 밖으로 감각이나 감정으로 향하던 마음을 거둬들여 내면의 세계를 바라보가 시작하는 거죠.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감정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이 알아차림’ 자체를 보는 겁니다.
여기서 통찰이 시작되죠.
고요함이 물이라면
통찰은 그 물이 맑아져
바닥이 보이는 순간과 같습니다.
결국 명상은
고요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고요함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꿰뚫어 보는 힘,
즉 통찰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요해지는 연습을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갖출 입구에 들어선거죠.
하지만 진정한 통찰 또는 깨달음은
이 고요를 기반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죠.
일단 마음을 고요히 하는 일에서 부터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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