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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Mar 01. 2023

⌜소희의 다음⌟을 저지할 단초 하나

  나 홀로 즐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주제에 끌리거나 사회이슈가 될 만한 영화를 챙겨보는 일입니다. 마침 걸어서 20분가량의 거리에 영화관이 있어 종종 이용합니다. 어느 때나 짬을 내 문화초대석에 앉는 것이지요. 게다가 경로우대의 혜택도 받습니다. 코로나 제재가 심할 때를 제외하고는 틈틈이 영화관을 찾곤 했습니다. 소수의 입장객수로 영화관이 문을 닫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을 했으나, 고맙게도 나 혼자 관객일 때도 영사기사는 어김없이 영상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조명을 받은 영화, ‘다음 소희’를 봤습니다.  


  화면이 뒤로 갈수록 한탄이 배어나옵니다. 실습장이 그토록 험지였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대기업의 사무직에 뽑혔다고 한껏 들떠있던 소희. 그녀에게도 대기업은 선망의 자리였을 테니까요. 그것도 잠시, 하청업체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콜센터에서 배정받은 자리는 온갖 화살이 날아드는 ‘욕받이’부서였습니다. 인터넷 가입해지를 막기 위한 별도의 조직, 최전선 총알받이 부대였던 겁니다. 계약해지가 통과되지 않도록 준비된 지침서, 단계별 멘트로 대응하며 저지하는 일이 그들의 업무였습니다. 그들은 정규직도 아닌 실습생이었음에도 센터 내 상품을 고객에게 추가로 판매할 것을 강요받습니다. 목표실적의 압박에 못 이겨 야근을 밥 먹듯 했습니다. 말이 좋아 상담원이지 일방적으로 당하는 고객의 험한 말씨름에 휘둘리고 내칩니다. 그런 그녀가 겪은 고통의 깊이를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요. 어린 나이의 사회초년생에겐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야근도 불사하며 받은 임금은 첫 달에 85만원, 그 다음 달은 125만원, 100만원 초반에 머물렀다니요. 알바생의 손에 쥔 것도 그 정도는 넘겼을 것입니다. 실습생이라지만 최저임금에 기준한 시급의 적용도 챙겨주지 않은 업체였습니다.


  설렘의 첫 직장에서 배려의 손길 대신 예기치 않은 진상을 만나 겪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실습장의 지옥체험으로 자립의 의지는 여지없이 꺾였을 것이고. 무력감의 나락으로 떨어진 소희의 마지막 길은 죽음이었을 테지요. 잔혹한 현실 앞에 죽음으로서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조차 부질없는 사치였을지 모릅니다. 그 배후의 인물들은 눈을 감은 채 모르쇠로 일관해, 구조적 부조리를 파헤치고 시정해줘야 할 과제가 관객들의 몫이라고 질러준 영화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1967년, 나는 실업계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사회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던 내 모교의 취업률은 100%에 이를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졸업하기 이전에 실습현장에 파견나간 일이 생각나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 영화에 더 관심이 갔던 겁니다. 고3 여름방학 한 달간 단행된 실습은 별도의 ‘보수’를 받는다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현장 업무파트너로서 배운 실력을 인정받는 체험의 장으로 비중을 두었으니까요. 당시 우리도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격적 차별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학력위주의 사회로 팽배했던 차별인식은 조금 사그라진 요즘이지만 예로부터 완전 벗어난 건 아닙니다. 되레 극복의 계기로 삼아 개인기를 살려 성장의 기회로 건너뛴 것 같습니다. 다만 소희가 겪은 아픔은 당시 우리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우린 적재적소에서 당당하게 배움을 실현해 보였으니까요. 그때 한국의 경제지표는 상승세를 이어갔고 기업체마다 인재가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순항하는 배에 올라 경제주역으로서 인정받는 운 좋은 항해를 이어갔던 겁니다. 


  지방대를 포함해 직업계 학교에서도 신입생모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심상찮은 보도가 있습니다. 취업경쟁은 기성세대 보다 심화되었고 배움이 짧은 취약계층은 더 옥죄어 옵니다. 언론기사에서 마주친 ‘○○실업고 취업률 100%달성’이란 홍보 문구가 허실이었음을 이 영화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취업내용은 더욱 당혹스럽습니다. 교육계의 수장이 취업실적대로 지원금을 차등배정한 배경이 그 원인이었던 겁니다. 해당학교는 지원금 욕심에 전시적 행정에 놀아나고, 학생들의 전공을 살리기는커녕 기본인권마저 아랑곳하지 않은 파행을 저지릅니다. 실적위주의 취업 성과를 올리다 보니 고교 취업 담당 교사에서부터 관련 공무원, 장학사 그리고 교육부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부실을 키웁니다. 소현이 죽음 앞에 자신들의 입지를 합리화시키려 들지 않나 툭하면 윗선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거죠. 사건이 터지기 이 전에 미리 현장을 직접 찾아 어려움의 디테일을 살피고 취업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생략된 채 말입니다. 자리만 차고앉아 가슴 없는 머리로 이룬 탁상정책일 뿐이지요. 아이들이 죽어나가야 뒤늦게 관련법을 제정하느라 호들갑을 떨고, 제정된 법 적용마저 더디게 나가는 이 현실을 어찌해야 하나요. 사건 담당형사도 처음엔 단순자살로 처리하려다 방향을 바꿔 추적해갑니다. 의미심장한 단서를 포착했지만 불가항력의 높은 장벽에 부딪치게 되면서 손을 내려 놓습니다.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지난한 과제임을 빤히 느꼈을 테니까요. 그런데요 그 밑바닥에는 우리사회에 뿌리를 깊게 내린 불평등이 자리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을까요.  


  기득권 세력이 보기에 하찮은 자리라고 여겨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탓입니다. 자본논리에 서 밀려난 사회적약자의 자리를 가리켜 기득계층은 노력하지 않은 결과적 상황으로 일축합니다. 시건방진 차별적 발상입니다. 엘리트층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의외의 일반대중조차 불평등을 선호한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즉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수의 차이가 클수록 좋다(한국리서치 2018<한국사회 공정성 인식조사 보고서>)라는 입장이 66%라는 점을. 허탈하지 않습니까. 

  언뜻 보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에 질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지는 순간 속절없는 나날이 비켜갈 뿐이지요. 이와 같은 영화제작에 적극 가담한다든가, 저항하는 공유의 글로 서로 나누거나, 초라하지만 알찬 공동체에서 모두 한 목소리를 내는 등. 하나하나 작은 실천에 지속적인 노력과 행동이 이어질 때라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작은 활동 하나로 무마될 일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밀도 있는 소통을 꾸준히 이끌어갈 민간주도의 창구가 생겨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맨 먼저 다가가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안아주는 일, 시작으로 감응하는 울림이 되기를요. 사회적 약자를 살리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면 언젠가 그 수치가 뒤바뀌는 날도 다가오지 않을까요. 누구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힘은 나약하나 연대의 힘은 강합니다. 여기에 희망을 실어야 할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죠. 


  나는 기성세대이자 노인으로서 평소 젊은 세대에게 빚진 마음이 있습니다. 비록 늙은 할미이지만 누군가가 연대의 선봉장으로 나선다면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참여하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사회 그늘진 구석을 밝게 비출 모두의 활동가로서 너도나도 나선다면, ‘소희 다음’을 저지할 단초 하나가 됨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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