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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Apr 27. 2023

예스런 골목문화에 대한 그리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태어나 자란 동네의 흔적이 변화무쌍한 서울 한복판에서 잘 살아 남았다니요. 되살아난 기억의 세포들이 골목에 이르러 꿈틀거리며 날듯이 걸음보폭에 가속이 붙었습니다. 70여 년간의 서울생활사에서 내게 안긴 이 같은 행운은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닐 겁니다. 이렇게 당당한 마을로 지정받기까지 우여곡절의 세월을 거쳤습니다. 서울 사대문 안, ‘북촌’도 ‘서촌’도 아닌 내 어릴 적 한옥마을이 역사적 가치를 뒤늦게나마 인정받게 된 것이지요. 원래 서울시에서 근린공원으로 설정했다가 그 지리적 중요성을 되짚게 되면서 도시재생방식으로 복원시켜 놓은 겁니다. 자칫 사라질 뻔한 화를 면해 대면하게 되었으니 내 생애에 이 같은 행복을 누려도 되나 싶었어요. 호사로 느낄 만큼 한아름 받게 된 선물이 되었으니까요. 으스러져라 껴안고 목가적 잔상에 머물러 단지 감성팔이에 나서려는 건 아닙니다. 


  내 고향 트로이카 전설인 이곳은 지금의 ‘돈의문 박물관마을’과 ‘경희궁’ 그리고 ‘서울역사박물관’입니다. 요즘 도심 한가운데 우뚝 솟은 마을로 등극했지만, 내 어릴 적엔 시골 정서를 자아낸 풍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옛 서울고등학교가 자리했던 경희궁터에는 병풍처럼 두른 성곽 위로 하늘을 찌를 듯 숲을 이루고 있었지요. 녹음이 우거질 때, 아카시 향기에 취해 재잘거리며 꽃을 입에 한 움큼 물고 동무들과 즐겁게 놀던 곳. 캐낸 칡뿌리의 구수한 맛도 그 이후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마땅한 주전부리가 부족한 때에 우린 그렇게 자연의 맛에 이끌려 유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들이 이곳으로 시집을 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가족이 된 마을공동체. ‘ㄷ’자 ‘ㅁ’자 모양의 올망졸망한 한옥은 여느 집성촌을 방불케 했습니다. 집안 대소사를 자신들의 집안일처럼 서로 거들고 맛난 음식은 당연 나눠먹던 시절이었습니다. 제사 때마다 시루에 찐 팥고물 두텁고 실했던 시루떡은 지금과 비교될 수 없는 맛이었고요. 무럭무럭 김이 서린 제사떡을 집집마다 돌리는데, 식지 않게 하려고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배달에 나섰습니다. 


  ‘돈의문박물관’ 골목을 한 바퀴 휘돌면서 추억은 새록새록 냄새와 맛으로 피어났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으뜸인 것은 우리 집 어머니표 녹두빈대떡 맛이었지요. 맷돌을 마주잡은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는 게 우선입니다. 곱게 갈아진 녹두 안에 돼지고기 고사리 숙주나물 등을 넣고 전을 부치는데 이때 불 조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직접 고안해 만든 부침 전용기구가 있었어요. 거기에 숯불을 집히고 쇠판을 올려 높은 열로 달구어 놓습니다. 석판을 올리고나면 돼지비계 조각을 빙빙 돌려 바른 뒤에 두툼한 두께로 빈대떡을 노릇노릇 구워냅니다. 맛을 유지함에는 적절한 온도를 조절하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바로 어머니 손끝에서 묻어나온 노련함이었죠. 명품빈대떡이었고 마을에서 칭송이 자자해지자 어린 내 어깨가 으쓱거렸습니다.


  맛 외에 숱한 얼굴들이 소환돼 줄줄이 따라 나옵니다. 떠올린 사람들을 구슬처럼 꿰다 보면 굵직굵직 성글게 다가오는 얼굴들이 있어요. 무수히 오고간 사람들 그리고 떠돌다간 사람들 삶의 파편들이 발부리에 걸려 들여다보는 것처럼 요. 햇볕이 좋은 날, 누구나 할 것 없이 집 앞에 의자를 내어 놓습니다. 골목을 지나가는 이들은 잠시 멈춰서 얘기꽃을 피웁니다. 주연은 마을주민이었지만 손수레 끄는 상인 머리 위에 한 짐 들어 올린 이동 상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골목안 공연조연급으로서 충분했습니다.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상인들의 입담에 익숙해진 주민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이들을 가족인양 반겨줍니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 간 골목 안 그림은 드나드는 외부인과도 융합을 이루며 사람 냄새나는 골목길로 완성해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절의 마을공동체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지금, 그때의 얼굴들은 박제되었고 외형만 ‘마을박물관’으로 변신했습니다.


  골목에 대한 향수를 느낄 분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골목’하면 언뜻 떠오르는 마을이 있습니다. ‘홍제동 개미마을’과 ‘부산 감천문화마을’입니다. 두 마을 모두 경사로와 계단을 이룬 산동네이고 마을전체가 야외미술관이자 관광명소입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배경이던 개미마을, 나는 화구를 들고 7년 전 방문했던 곳이기도 했죠. 두 곳 모두 끝 모를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에서 상대의 옷소매가 스칠 정도의 좁은 공간이지만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옆집의 말소리가 담을 타고 다음 집으로 흘러 넘어갈 듯 아슬합니다. 이곳에서 이삿짐의 이동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자아냅니다. 두 곳 모두 따뜻하게 피어나는 주민들의 말소리와 체온이 전달되도록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제공할 것입니다. 정겨운 이곳을 꼭 찾아가 보시라.


  그런데 우리에게 이웃한 골목만 사라져가고 있을까요. 각기 바쁜 생활로 코앞에 벌린 ‘일’만 보이고 ‘관계’는 소원해지지 않았나요. 사람들에게 있어 ‘길’이란 진일보한 속도와 편리를 제공받는 차도로만 인식될 뿐입니다. 스피드에 익숙하다보니 멈춰야 볼 수 있는 소중하고도 미세한 부분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요. 경제논리에 반한다며 좁다란 골목길에 도열한 나지막한 주택들을 고민 없이 깡그리 허물어버리고 높디높은 건물로 하늘을 가리는 요즘 세상입니다. 몇 해 전 연말, 나는 아파트 승강기에 “주민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밥 한 끼 먹으며 담소 나누어요. 많이 참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글을 써 붙인 적이 있습니다. 그 날, 모임 장소에 나온 주민은 딱 한 사람, 아기를 등에 업고 나온 젊은 아낙뿐이었죠. 그 다음에도 얼굴 익힌 몇몇 주민을 집에 초대한 적 있지만, 망설이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로는 다시 제안할 용기가 당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간간이 만나 밥 한 끼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주민 한 사람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쯤에서 마을 이웃사촌이 되어 옆집을 내 집 드나들듯 오지랖을 떨던 그때의 공동체가 그립습니다. 시류를 타고 변화하는 유행처럼 사람들의 관심도 언젠가는 예스러운 문화로 회귀할 날이 도래하지 않을까요. 요즘 일고 있는 복고풍 분위기에 편승해서 옛 패션과 음식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증가 일로에 있기에 말입니다. 옛적 골목에서 취한 휴식과 오고간 위안의 말들에는 관계성유지란 주제가 뚜렷했습니다. 요즘처럼 거리감을 두고 겉도는 느낌을 주고받으며 씁쓸함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관계에서 우린 건성건성 살고 있지 않나요. 그러니 관계성회복이 강하게 요구되는 시기가 바로 요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단한 삶 속에 사람만이 희망이고, 살며 서로를 배려하는 공간이 마을단위로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 부질없는 욕심일까요. 사라져가는 골목 문화를 대체할만한 일은 신개념의 마을공동체가 그 유일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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