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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Nov 01. 2023

멋진 노년기 디자인

  양평 전원생활 시절부터 마음에 품어온 지인이 있습니다. 나 홀로 1900여 평의 땅을 한 땀 한 땀 꾸려가던 내게 뜻하지 않은 일들은 느닷없이 닥치곤 했습니다. 속수무책인 일을 당해 도움을 청하면 두 말 없이 차를 몰고 찾아온 그였지요. 전원생활을 하며 알게 된 인터넷카페 동호인으로서 그는 인접한 동리(洞里)에 살고 있었습니다. 왕래가 잦아지고 건네기 어려운 속사정까지 털어놓는 그의 신뢰를 받으며 돈독한 사이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제가 서울로 유턴하게 되었지요. 소식이 점점 뜸해졌고 상경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이쪽에서 전화를 넣지 않는 한 아예 꿈적도 않는 겁니다. 목수인 그가 잘 살고 있다고 안도했는데 대체 무슨 이유에서 일까. 궁금하다 못해 섭섭함이 고개를 들었지요. 이내 석연치 않은 마음을 풀어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습니다.    


  일방통행 안부로 시그러졌던 나를 다시 부추겨 2년 여 만에 손 전화를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감사함을 떨칠 수 없었던 거죠. “여보게 왜 그렇게 오리무중인가. 나에게 섭섭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자네 집안과 잘 이어지길 바라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속 시원히 말해주게.” 반갑게 전화를 받더니 이어진 그의 말은,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1년 여 일 없이 놀고 있어요. 요즘 주택경기가 완전 죽었거든요. 코로나 이후 근근이 이어오던 팀원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고 있어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지닌 땅 위에 목조주택을 짓는 것인데 건축 재료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가진 돈도 부족하고 이래저래 난감합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10kg이상 몸무게가 줄었고요. 이러니 다른 곳에 마음을 쓸 여유가 있어야지요.” 어느새 그의 나이도 60대중반에 이르렀습니다. 70대 이후에는 벌어놓은 것으로 안정되게 살면서 슬렁슬렁 용돈벌이 정도로 활동할 요량이었는데, 그의 소박한 꿈에 난관이 봉착한 겁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해진 그의 마음이 서울로 올라온 내게 마음을 열 여유가 있겠는지요. 그의 말에 맥이 쭉 빠졌습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성의를 다했고 그도 언젠가는 되씹게 될 날을 맞으리란 실낱같은 희망이 섭섭함을 잠재웠습니다. 이제 그에게도 발효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런데요 단지 팍팍해진 생활이라고 누구나 마음의 여유를 잃어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지인은 월세 집에서 살며 한 달 한 달 연명하듯 살아가고 있지만, 늘 밝은 에너지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잃지 않는 ‘마음부자’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여건이 허락하는 내에서 주위를 살피고 챙깁니다.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며 행복한 얼굴을 짓고 있어요. 이렇게 한 달 수입이 적더라도 ‘만족할 줄 아는 삶’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기본요건은 갖추어야 하겠지만 그 기준조차 자신이 정하면 된다고요.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남을 짓밟고 착취하면서까지 많은 돈을 번 들 그들 양심에 떳떳해질 수 있을까요. 정직하게 번 돈이야말로 액수가 적든 많든 당사자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정직’을 지키는 것이 이 사회에선 외롭고 고난한 길이지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의로운 가치일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하다 보면 자신이 든든하다 못해 어느 곳에 나서더라도 꿀릴 게 없는 당당함이 생깁니다. 이것이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동력이 되어 주거든요. 이건 지금껏 살아 터득한 참이랍니다. 


  그리고 젊어서부터 돈 버는 일 보다 중요한 것은 벌어놓은 돈을 안배하여 잘 관리하는 것이 미래 노후대책의 관건임을 주지하십시오. 많은 돈을 축적해 놓았다고 해도 안심할 일이 아닌 겁니다. 노년에 벼락거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십니까, 노년에 경계를 늦추면 안 될 일들을. 나이 들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병에 걸려 재산을 잃는 것이 그 첫째요. 귀가 얇아져가는 노년에 주변사람의 농락으로 사기를 당하는 것이 두 번째. 나이 들어 느닷없는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가 재산을 몽땅 잃어버리는 경우가 세 번째입니다. 

  사람들의 물리적 욕망은 노년에도 멈출 줄 모릅니다. ‘기본적인 욕망’은 생명유지에 필요하지만 ‘건전한 욕망’이 아니라면 멀리해야 합니다. 경제를 부인할 수 없지만 돈에 대한 몰입과 집착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노후에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받아들이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에도 좋습니다. 재산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가난을 받아들이며 살면 되는 것이니까요. 가난을 부끄러워야 할 일이 아닌 거죠. 또한 가난해지는 게 아닌 내가 선택한 가난은 자연생활에 가깝습니다. 즉 죽음이 가까워진 노년에는 물리적인 가치는 접고 청빈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맞습니다.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누고 빈손으로 떠나는 게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요. 거듭 말하거니와 물리적 욕망은 노년의 일상을 해롭게 합니다. 그로부터 끄달리며 헤어나질 못하니 머리가 늘 복잡하고 마음 또한 평화와 멀어지기 때문이죠.  


  한편, 노후에는 주변이 허전해지며 결핍을 느끼기 십상입니다. 결핍은 불필요한 욕망을 불러오기 마련이죠. 특히 노년의 남성들이 내세울 만한 명함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워서 객기와 허세를 부리며 결핍을 채우려는데 뻔한 결말이 대부분입니다. 결핍으로 일어난 욕망의 어느 쪽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판단할만한 잣대가 있습니다. 정말 내게 ‘필요’로 한 일인가, 아니면 ‘단순 욕망’인가 저울질해보는 것이지요. ‘필요’한 욕망이라면 결핍을 밑거름 삼아 생산적인 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닌 돈을 사회 환원하거나 자신의 재능기부로 나눔 하는 일이죠. 이 같은 사회공헌에 나선다면 정신건강에도 이롭지 않겠어요. 우리는 ‘찰나’의 시간 연속성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은 ‘찰나’의 일순간을 놓지 않고 최선을 살아낸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60대 이후의 정서적 안정은 인생 클라이맥스를 이룰 노년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멋진 노년기’의 디자인을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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