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다소 비장함에서 비롯됐습니다. 늙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무렵이었지요. 주어진 업무에서 벗어나 홀가분하다 싶더니 치러야 할 통과의례가 다음을 장식하고 있더군요. 고정된 활동이 줄어들면서 동반 하락하는 인맥에 꽤나 당황했습니다. 대책 없이 집에 머물다 두툼한 나이가 보태지며 타성에 의해 그럭저럭 나아가기 십상인 노년기. 속절없이 그렇게 밀려가 듯 살아가는 삶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채워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빈자리가 되레 자극을 촉진시켰고 결기마저 차오르게 했습니다. 그렇게 빈 시간을 내 곁에 온전히 끌어다 놓을 기회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머지않아 사그라질 불꽃이지만 또렷한 의식이 남아있을 때까지 내 안에 군불 지피는 일을 게으르지 않기로 한 결심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무두질로 다져진 늙은 솔로의 묵직하나 선연한 이야기를 펼쳐보렵니다.
노후 솔로의 세계가 흐릿한 담색으로 채워져 있지만은 않다는 것, 노년의 불가역적 부재와 결핍이 노인의 삶을 싸잡아 연민에 찬 시선으로 담아낼 수 없다는, 송두리째 투영된 나의 행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누구라도 던져질 노년에 이를 텐데, 그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개인적 소망도 함께 실었습니다.
노년의 일과는 고독을 견디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늙음의 결정적 증거로는 몸 보다 먼저 마음상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데에 달려있습니다. 짙게 드리워진 외로움이 변질되어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얼마나 민망한 일이 될까요. 혼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홀로될 확률이 높아진 세상입니다.
자식이 있다 한들 살기에 바빠진 자녀들의 생활이 부모 곁을 지키기 어렵고, 여느 부부일지라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명을 재촉하다 갑작스런 혼자를 맞게 되어있죠. 이리 혼자가 된 사람이 홀로 남겨진 시간의 결핍을 잘 극복해야 행복의 근간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한편 노년기 정서적 공백을 지지해줄 가족 외에 외부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란 상호이익이 있어야 유지되는 것이고, 누구나 ‘이기적 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사실 앞에 고개를 내저을 사람이 과연 몇이 될까요.
문제는 내 마음을 먼저 내보일 태세는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서 날로 받을 생각만 골똘해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엇박자가 관계의 불협화음을 일으킬 주범이겠고요. 바람직한 관계로 끌어오기까지 그 노력의 여부는 각자의 몫이 되겠지요. 게다가 손에 익은 연장처럼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게 이어갈 관계유지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주위에서 벗을 구하기 이전에 내 마음의 근육을 살찌우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부터 단단해져야 타인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법이니까요. 나에 대한 사랑이 충만해져야 돌보는 이의 마음까지 보듬을 여력이 생겨나는 것일 테고요.
그렇게 내면에서 끌어 올린 글 작업이 발판이 된 지금, 평생도반까지 만들어진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허접한 글이지만 난데없는 두레박질로 다져진 마음에는 탄탄한 근육까지 붙게 되었지요. 긁적긁적 서툴게 쓴 글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군불 지피는 삭정이가 되었고요.
그런데 아시나요, 미미하기만 했던 잔불이 의외로 오래가고 몽글몽글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음을요.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한 어둠의 실체가 비로소 드러나더니, 글에 머물던 시간의 진폭까지 넓혀주며, 의미 있는 궤적을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써 내려온 글의 질감들이 이때껏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였음을 벼락 치듯 깨달았던 겁니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배려로 출발하게 된 글쓰기. 나를 탐구해가는 시간의 연장선으로 주목을 받을 만했습니다. 거기에 나 자신을 맡긴 일이 모르는 이들과도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점도 더 분명해졌고요. 글을 쓰면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집중력이 정신건강에 좋을 수밖에 없더군요. 그로써 평생 친구를 구한 효과로 주변의 관계에도 윤활유가 됨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직면한 죽음준비에 이르기까지 몰입하고 술회할 수 있었음은 고마울 따름입니다.
비장함에서 출발했고 통렬한 각성으로 써 내려간 나의 글쓰기, 서러웠던 상념의 무게는 이제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내 노년의 열정을 불사르기에 충분했던 그 불씨가 이젠 꺼지지 않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내 동력이 되고 만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글을 쓰게 된 배경의 밑그림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