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많이 아프더니 얼마 후 상태가 헬스장을 다녀올 만해서 안도했습니다. 안심하기엔 이르나 6주 만에 호전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동안 오락가락했으니 다음 활동을 세우기 위한 예측이 어렵더라고요. 초겨울에 접어들 환절기에 널뛰기 기온 차이로 적응하지 못하는 늙어가는 몸인 것을요. 지난해와 사뭇 다른 기울기라서 깜놀했습니다.
한 해 한 해 내리막길의 몸 상태를 받아들이는 건 담담한 죽음에 이르는 예행연습이 되겠지요. 그로부터 잡혔던 예약일정은 모두 취소하고 병원 문턱을 수시로 밟게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자연이 화려한 색조로 물드는 늦가을, 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치솟는 우울감을 감출 길 없었고 속수무책 밀려온 무기력증은 덤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활동하기에 괜찮은 나이, 70대이니 훌훌 털고 일어서기로 했습니다.
그러느라 한 달에 두 권의 책 읽기에 실패했습니다. 시원치 않던 몸을 유지하려니 집중력이 떨어지며 자리에 자꾸 눕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습니다. 덩달아 계획했던 가을여행도 수포가 되고 말았고요. 지난봄 더 나이 들기 전에 틈틈이 여행을 다녀오자 다짐했던 일입니다. 여행이 귀찮아질 나이에 접어든 선배들의 경우가 곧 내 차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지요. 젊어서는 눈 호강 중심의 여행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런 감각적인 즐거움은 일회성에 지나지 않아 내 삶의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하더군요. 한순간 일어난 감흥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소모적 여흥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몇 해 전 여행 순방의 목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죠. 죽기 전, 내게 의미를 부여한 곳을 손꼽아 보기로 말입니다. 혼자 떠나 걷는 여행은 심심하다 여기겠지만, 침묵으로 일관한 여정은 가식이 끼어들 수 없어 자신의 모든 것을 벗겨내는 예술적 직관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여행은 이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두 해 전부터 부쩍 여행을 추진해왔고 무난히 잘 넘겨 끄떡없으리란 기대는 이 늙은이에게 과욕일 줄 몰랐습니다. 지리산 생명평화기행과 경주 남산 석불의 미소와 대면하기까지 몸에 무리를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이후 김해 봉하마을을 다녀와 피곤이 밀려왔을 뿐입니다. 비용도 아낄 겸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하염없이 걷고 길에서 보낸 여행이 내게 무리였나 봅니다.
모르는 길을 안내지도 한 장에 의지해 무작정 걸으며 마주친 얼굴들과의 눈인사, 풀 한 포기, 뺨에 스치는 바람과 풍경들이 정겹게 되살아난 듯했습니다. 침묵과의 동행에서 와 닿은 느낌들이 세포에 녹아든 순간이었죠. 차량의 빠른 속도에서 느낄 수 없는, 길 위의 이야기가 확장되며,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으니까요. 거리의 침묵, 수다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 그것만으로도 맑은 정신의 휴식이 보장된 것이죠.
그렇게 누비고 다니느라 내가 노구임을 깜박했나 봅니다. 그뿐인가요. 이동 중에 여행 짐은 어깨에 지고, 손에 또 한 짐 들은 채 오르락내리락 버스를 이용하느라, 노동의 고됨도 추가되었을 테죠. 부질없는 희망이지만 짐만이라도 누군가 들어주는 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지금 같은 여행이 과연 지속가능한 일이 될까 생각해 보긴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이리 마감되었으니 내년 여행계획을 만지작거릴 수밖에요. 몸을 달래가며 차후에 여로를 열어볼 요량입니다.
낙심하던 중에 이를 무마해서 위안이 되어준 일이 있습니다. 바로 글 쓰는 분량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년의 하루를 지탱해주는 힘은 하루의 계획된 일과를 미루지 않고 차근히 해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감당할만한 소일거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만큼 확실한 이익이 또 있을까요. 폼나는 자리를 좇느라 탈진시키고 애먼 자신이 되기보다, 소박하지만 실행 가능한 일에 자신의 족적을 밟아 충만해지는 자신으로 가꿔가는 일로 말입니다.
또 하루가 저물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하느라 열공하는 중이지요. 그런데요 이런 몰입의 순간들은 단단해지려는 내 내면을 지원사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 반복적으로 몸에 붙인 좋은 습관들이 자리매김한다면 불량하고 잡다한 일들이 끼어들 틈이 생겨나겠어요. 단지 죽는다는 것과 늙어가는 것이 함수적 관계이듯, 점점 떨어져가는 내 몸의 상태도, 다른 잉태의 과정을 통해 새 생명으로 회귀해가는 자연현상일 테니 어쩌겠습니까.
오지 않은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고 ‘괜찮은 지금’, 정해진 일에서 손 놓지 않는 일 외에 내가 나설 일이 따로 있을 턱이 있습니까. 정신줄 놓지 않고 안정된 생활리듬을 유지하려면 방전되지 않을 배터리로 장착하는 것이 노년기에 중요한 방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