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손에 자주 쥐어지는 책이 있습니다. 서점가를 강타한 일본 실버 센류 걸작선,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유머 감각이 젬병인 나는 이 책을 통과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웃음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일본 노인들의 해학과 익살이 기억력 퇴행의 실체에서 등장했지만 그들만의 언어는 보통의 언어를 넘어선 특별한 세계로 독자층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렇다고 즐거움에만 머물 수 없는 민망함도 동반되더군요. 웃음 너머로 꽤나 묵직한 동병상련의 양가감정이 내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게 아닌가요. 그야말로 웃픈 현실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워지는 듯했습니다. 그 일부에 걸친 나의 증상도 언젠가 슬그머니 다가와 이지러질 기억의 저 파편으로 사라져갈 즈음, 죽음이 데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름이 생각 안 나 / ⌜이거⌟ ⌜저거⌟ ⌜그거⌟로 / 볼 일 다 본다⟫ ⟪이것도 소중해 / 저것도 소중해 / 그러다 쓰레기방⟫ ⟪일어섰다가 / 용건을 까먹어서 / 다시 앉는다⟫ 등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쓰레기방’을 가꿀 정도의 급발진은 아니지만 재활용쓰레기를 정리할 때마다 훗날 쓸모 있게 쓰일 물건들을 남겨놓는 때가 내게도 있습니다. 실제 그런 물건을 요긴하게 사용한 경우도 더러 있었거든요.
어느 날, 압구정에 거주하는 한 지인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아파트에 버려진 쓰레기를 집어와 자꾸 집안에 쌓아놓는다며 괴로운 표정을 짓더군요. 지나친 현상이긴 하지만 1960년대 궁핍하게 지냈던 시절의 경험이 뇌리에 각인돼 있어, 잘살게 된 이후에도 버려진 물건들에 대한 집착을 불러오게 한 거죠. 부유한 동네에서 멀쩡한 물건들을 내다 버리는 그 지역의 풍토도 한몫을 했을 테고요.
기억력 감퇴는 노화 그리고 스트레스 • 건강문제 • 수면부족에서 온다고 했던가요. 그러니 늙어가는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만은 아니겠지요. 기억 퇴행의 진행은, 젊거나 늙음을 떠나 개인이 처한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을 텐데요. 게다가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넘쳐나는 정보로 포화상태에 내몰린 뇌의 기능은 그런 기억들을 자동으로 용도폐기하고 있지 않나요. 대부분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담는 뇌의 기능은 이미 보편화된 상식으로 통합니다. 그러면서 우린 지척의 환경을 메마른 풍토로 갈아치우면서까지 쓰레기 같은 기억들을 양산해내며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지요.
그러면서 문득 이와 같은 기억력 퇴행이 되레 반길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숨결이 바람결로 흩어지는 날, 가벼운 몸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포화 상태에 이른 기억의 창고를 하나둘씩 비어낼 연습이 필요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그런 ‘텅 빔’에 대한 건강한 욕구는 머지않아 떠나는 이에게 축복된 죽음을 이끌기에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단순명료한 삶을 살다가 훌훌 털고 저세상으로 날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니 쇠잔해갈 내 기억의 퇴행을 굳이 측은하게 여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실천해 온 일이 있습니다. 죽음을 대비해 연말마다 지닌 물건들을 정리하는 겁니다. 주로 애장품이죠. 아끼는 옷이지만 몸에 걸치고 외출할만한 행사가 줄어든 노년인 탓에 한해 두어 번 입어 봤을 옷가지들. 의미 담긴 물품이라서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한다는 것이 바깥세상과 차단시켜 생명을 잃게 할 그릇들. 그 외에 값나가는 카메라와 그림액자 등등.
쓰임새와의 종말을 이미 고한 과거 쓰레기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되돌리려는 추억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꽤 있을 듯합니다. 해마다 줄이고 줄여도 훗날 남겨질 유품은 나오기 마련이겠죠. 끝없이 이어질 용도 폐기될 물건들의 뒷감당을 어찌하나요. 특히 홀로 사는 사람들에게 반길 소식이 있습니다. 전문 유품정리사에게 의뢰해서 사전 유언장에 적시하고 비용을 남겨두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미니멀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쓰레기를 지구에게 덜 남기는 미덕이 되겠지요.
문제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들이닥친 죽음으로 유품들을 대책 없이 양산시킬 일은 삼가야 한다는 겁니다. 기억 퇴행의 만기가 도래하기 이전에, 그나마 판단력이 살아있을 때, ‘쓰레기 산’을 이룬 공헌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구명운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죽음준비는 이처럼 전 생애를 거쳐 장대하나, 세심한 과정의 연속작업인 것입니다.
떨어져가는 기억력이 순차적으로 물리적인 시간대를 거치는 게 아닌 만큼, 바짝 몰아갈 시기를 놓치면 안 될 일입니다, 이젠 너무 진지한 세상사에 갇혀 있지 않고 그때그때를 살아내겠다는 새 마음을 냈습니다. 서늘한 머리로 객관화된 사물을 바라보게끔 유지될 날들이 길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즐거웠던 기억도 일순간 과거에 머문 즐거움의 재현일 뿐이며, 고통의 기억 또한 찰나 지나간 과거의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단순 진리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은 더 큰 세상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단편적 현상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고요. 그러니 좋은 기억과 나빴던 기억으로 나눠 집착할 일도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려는 것이겠지요. 이제 저 너머의 세상을 향해 발돋움하려는 연습에 나서렵니다. 그 길이야말로 내 죽음의 질을 높여줄 유일한 방책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