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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의 정신적 버팀목

by 정미영

양평 전원생활 시절부터 마음에 품은 지인이 있습니다. 나 홀로 1900여 평의 땅을 한 땀 한 땀 꾸려가던 내게 뜻하지 않은 일들은 느닷없이 닥치곤 했습니다. 속수무책인 일을 당해 도움을 청하면 두말없이 차를 몰고 찾아온 그였지요. 전원생활을 하며 알게 된 인터넷카페 동호인으로서 그는 옆 동리(洞里)에 살고 있었습니다. 왕래가 잦아지고 건네기 어려운 속사정까지 털어놓게 된 그와 신뢰를 쌓아가며 돈독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일로 내가 서울로 유턴하게 되었지요. 소식이 점점 뜸해졌고 상경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부터 이쪽에서 전화를 넣지 않는 한 아예 꿈적도 하지 않는 겁니다. 목수가 되어 제2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무슨 변화라도 생긴 걸까. 궁금하다 못해 섭섭함마저 치솟았습니다. 이내 석연치 않은 내 마음을 풀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처지에 놓였지요.

2년여 만에 손 전화를 넣었습니다. 그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고마움도 떨쳐낼 수 없던 것과 함께.

“여보게, 왜 그렇게 소식이 깜깜인가? 나에게 섭섭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자네 집안과 잘 이어지길 바라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속 시원히 말해주게.”

반갑게 전화를 받더니 이어진 그의 말은,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1년여 일없이 놀고 있어요. 요즘 주택경기가 완전 죽었거든요. 코로나 이후 근근이 이어오던 팀원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고 있어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지닌 땅 위에 목조주택을 짓는 것인데 건축 재료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가진 돈도 부족하고 이래저래 난감합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10kg이상 몸무게가 줄었고요. 이러니 다른 곳에 마음을 쓸 여유가 있어야지요.”

어느새 그의 나이도 60대 중반에 이르렀죠. 70대 이후에는 벌어놓은 것으로 안정되게 살면서 슬렁슬렁 용돈벌이 정도로 일을 받아들일 요량이었는데, 그의 소박한 꿈에 난관이 봉착한 겁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해진 그의 마음이 서울로 올라온 내게 마음을 열 여유가 있겠는지요. 그의 말에 맥이 쭉 빠졌습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로 소중한 인연이었음을 되씹게 될 날이 그에게도 다가올 것이란 기대감으로 섭섭함을 누그러뜨렸습니다. 그에게도 발효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런데요, 단지 팍팍해진 생활을 겪는다고 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잃어갈 마음의 여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지인은 월세 집에서 살며, 한 달 한 달 연명하듯 살아가고 있지만, 늘 밝은 에너지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잃지 않는 ‘마음부자’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여건이 허락하는 내에서 주위를 살피고 챙깁니다.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며 행복한 얼굴을 짓고 있어요.

이렇게 적은 수입이라도 ‘만족할 줄 아는 삶’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기본요건은 갖추어야 하겠지만 그 기준조차 자신이 정하면 된다고요.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남을 짓밟고 착취하면서까지 많은 돈을 번다고 한들 그들의 양심이 떳떳할 수 있을까요.

정직하게 번 돈이야말로, 액수가 적든 많든 당사자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정직’을 지키는 것이 이 사회에선 외롭고 고난한 길이지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의로운 가치가 될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하다 보면 자신이 든든하다 못해 어느 곳에 나서더라도 꿀릴 게 없는 당당함이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는 동력이 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껏 살아 터득한 참이며, 노후준비에 든든한 덕목이 됨을 확신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젊어서부터 돈 버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벌어놓은 돈을 안배하여 잘 관리하는 것이 미래 노후대책의 관건임을 주지하십시오. 많은 돈을 축적해 놓았다고 해도 안심할 일이 아닌 겁니다. 노년에 ‘벼락거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십니까? 노년에 경계를 늦추면 안 될 일들을. 나이 들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병에 걸려 재산을 잃는 것이 그 첫째요. 귀가 얇아지는 노년에 주변 사람의 농락으로 사기를 당하는 것이 두 번째요. 나이 들어 느닷없는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가 재산을 몽땅 잃어버리는 경우가 그 세 번째입니다.

사람들의 물리적 욕망의 채움은 노년에도 멈출 줄 모릅니다. ‘기본적인 욕구’은 생명 유지에 필요하지만 ‘건전한 욕구’가 아닌 욕망이라면 멀리해야 합니다. 경제를 부인할 수 없다 해도 돈에 대한 몰입과 집착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특히 노후에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것이 몸 건강에도 좋습니다. 재산이 있는 것도 좋겠으나 없으면 없는 대로 가난하더라도 살아지게 되어 있거든요. 다만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또한 가난해진 게 아닌 내가 선택한 가난은 자연인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죽음이 가까워진 노년에는 물리적인 가치는 접고, 청빈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맞습니다.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누고 빈손으로 떠나는 게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요. 거듭 말하거니와 물리적 욕망은 노년의 일상을 해롭게 합니다. 그로부터 끌어 당겨져 헤어나질 못하니 늘 머리가 복잡해서 마음의 평화와는 멀어질 뿐입니다.


한편, 노후에 주변이 허전해서 결핍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핍은 불필요한 욕망을 불러오기 마련이죠. 특히 노년의 남성들이 내세울 만한 명함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워서 객기와 허세를 부리며 결핍을 채우려다 뻔한 결말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결핍으로 인해 일어난 향방이 ‘욕구’인지 ‘욕망’인지 판단할만한 기준 잣대가 있습니다. 내게 ‘필요’로 한 일인가 아닌가 저울질해보는 것이지요. ‘필요’로 하는 욕구라면 결핍을 밑거름 삼아 생산적인 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닌 돈을 사회 환원하거나 자신의 재능기부로 나눔 하는 일이죠. 이 같은 사회공헌에 나선다면 정신건강에도 이롭지 않겠어요. 우리는 ‘찰나’의 시간 연속성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은 ‘찰나’의 일순간을 놓지 않고 최선을 살아낸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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