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체불명의 진원지, 시추의 시간

by 정미영

얼마 전부터 울적한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인지 감을 잡을 수 없더군요. 뭔가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감을 받아 허전했고 매사에 흥미를 잃어 힘이 빠졌습니다. 분명 감당하기 어려운 ‘쓸쓸함’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감정의 진원지를 밝혀낼 시추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인근 현충원 내 ‘솔냇길’을 속절없이 걸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걷는 일만큼 좋은 선택이 따로 있을까요. 살고 있는 지역 내에 상대적으로 인적이 뜸해 사색하기 적당한 곳이었지요. 스쳐 지나갈 뭇사람들과 부대낌이 일지 않아 내 안에 쌓인 여러 층의 생각들을 한 올 한 올 벗겨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인 두 사람을 떠올렸어요. 두 사람 모두 뚜렷한 체취와 맑은 성품의 존재만으로 먼발치에 있어도 뿌듯한 감을 유지해 준 인물들입니다. 그들 못지않은 정신영역을 구축했다 생각했는데 무엇이 이런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대는 것인가. 그런 너의 정체는 대체 뭐냐.


“교수님은 지속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몇 분이나 되세요.” 일 년여 만에 만남의 자리에서 던진 내 질문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연구생 제자들이 친구이자 유일한 동료인 셈이죠.” 각자 몸담은 분야에서 삶의 지향점이 확고해지면서, 오랜 우정일지라도 구심점이 서로 다르다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연이어 주고받았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기준점과 생활가치관이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아 엉성한 관계로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지요.

이분은 서울 모 대학에서 생태학을 가르치고 있고, 30년 전 내게 ‘숲해설’이란 신세계를 열게 해준 특별한 인연입니다. 한때 함께했던 시간대의 공유로 줄곧 연락을 주고받은 사이였던 겁니다.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두 번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소중한 관계이지요. 오랜만의 대면에도 어색함 없이 물오른 대화로 이어졌고, 다음을 또 기약하고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산 모 대학에서 환경공학 교수로 재직 중인 25년 지기지우님. 늦깎이로 시민사회단체에 진입한 내게 일관성 있는 자세로 임해 준 각별한 인연입니다. 워낙 바쁜 일정과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는 연유로 귀경하면서, 짬을 내 한 시간여 만남에 그쳐야 했습니다. 지난해 2월 그렇게 잠깐 서울시청 부근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간만의 만남도 나에 대한 배려임을 잘 압니다. 만남의 갈증을 느낀다 해도 과한 욕심을 부릴 수 없는 바로 배경이지요. 결핍의 틈새를 메워줄 자상하고도 세심한 배려가 그분의 태도에서 나옵니다.

본인의 신문기사 연재물을 개인톡으로 틈틈이 보내주지를 않나, 본인 저서를 보내 본의 아니게 환경공부까지 하게 만드는 등등 ‘관심’어린 선물을 받고 있지요. 그렇게 랜선으로 이어지는 관계도 꽤 탄탄한 보정의 효과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곁들여서 외동아들인 자신이 ‘누님’이 없다는 말을 간간이 흘려듣지만, 내 의중과 상관없이 이미 그 자리에 나를 앉힌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개벽에 가까운 영향을 끼친 절묘한 만남은 얼마나 될까요(그런 행운을 만나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겠지요. 스승으로 삼을 만한 책을 접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은 고귀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몇 해 전, 마음속에 지닌 큰 인물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잃었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에서 한동안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감마저 당분간 접어 넣으며 혼자의 시간 속으로 잠적해 버렸습니다.

상흔으로 인한 마음을 추스르려면 고독과 친밀하게 지내야 함을 숙지했고 비교적 잘 단련된 정신상태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몰된 ‘나’ 자신을 붙잡아 일으키려면 혼잡한 군중 속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홀로 있어야 했습니다.

보십시오, 탁월했던 선 지식인들은 당대에서 받은 질시의 비난과 곤경을 당할 때,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이겨내지 않았나요. 그런 연마의 시간을 거쳐 ‘위인’을 닮은 창조된 세상 하나를 툭 던져, 번뜩이는 섬광 같은 글을 남겨 우리를 열광케 했습니다. 위대한 이의 글 주위를 탑돌이 하듯 맴돌았던 일은 내게 구원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지내왔던 겁니다.


그랬던 내게 다시 비집고 들어선 정체불명의 진원지가 뭔지 탐구해야 했습니다. 먹먹한 순간의 먹구름이 거치며 빛이 깃들기까지 긴 시간을 요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하는 일이 한계에 부딪친 것이죠. 그렇습니다. 홀로 살아 삶이 정체되지 않게 내 안의 공기를 바깥의 그것과 환기시켜 줬어야 했어요. 그들처럼 함께 나누며, 비판 과정을 통해 보호와 자극받으며 서로 선의의 경쟁을 나눌 공론장이 있어야 했음을. 서로의 성장에 자극을 주고받는 그들처럼 소속된 곳이 내게 없었던 겁니다.

그런 곳에서 힘을 주고받지 못한 까닭에 마음 한구석에 찬 바람이 몰아쳤던 것이고요. 앞서 소개한 두 지인들은 그런 무대를 확보한 것과 달리 그렇지 못한 내 처지와 비교가 되며 발생한 파열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자 이제 진단은 내려졌고 처방까지 나왔으니 그 해법은 내 손 안에 달렸습니다. ‘문제’의 진단이 ‘과제’로 변환시킨 숙성된 마음은 산책을 통해 건져낼 수 있던 겁니다.


현충원 ’솔냇길’에는 ‘솔’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나무 아닌 10m 이상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산책길에 도열해 있습니다. 짱짱한 그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얼마만큼 걸어 내려갔을까요, 몇몇 은행나무의 표피가 벗겨져 허연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게 아닌가요. 흉물스럽기도 하고 안타까워 보는 이의 마음을 언짢게 했습니다. 그 상흔을 겪고서도 아무 일 없듯 무성한 잎을 피워내는 은행나무의 저 저력이라니. 내 알량했던 마음이 부끄러워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싶었습니다. 돌아 나오며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성향에 현충원 사무실에 전화를 넣는 오지랖을 떨고 말았지요. 마침 담당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곧 해결할 것이라는 답을 듣고 나서야 이내 홀가분해진 마음과 함께 그곳을 잽싸게 빠져나왔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떤 상실에도 무뎌지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