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域이 된 連帶

by 시온

거대한 힘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의 共生을 존중한다. 그래서 더 말해야 한다.


연대는 경계를 넓히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울타리를 높이는 것을 연대라 부르게 되었을까?


최근 유수의 대기업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 논리를 조금만 따라가 보면 모순이 드러난다.


같은 논리라면 식당의 서빙 로봇도 철거해야 한다. 공장의 용접 로봇팔도 없애야 한다. ATM이 은행원을 대체했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되돌리지 않았다. 기술 발전을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특정 대기업 직원의 일자리만 다른 기준을 적용 받는가?


문제는 보호의 범위다. 왜 특정 기업 내부의 고용만 절대적 가치가 되는가? 로봇 도입이 한 굴지의 대기업에서 지연되면 그 기업만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협력사, 부품업체, 물류와 서비스 산업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런 흐름이 여러 기업으로 확산되면 국가 전체의 산업 경쟁력이 흔들린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고, 신규 고용은 축소되며, 미래 일자리는 해외로 이동한다. 기술 전환을 늦춘 대가는 언제나 다음 세대가 치른다. 이미 강한 내부자가 변화의 비용을 사회 전체에 전가하는 구조를 우리는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 회사 노동자의 일자리"라는 단일 기준이 모든 가치를 압도한다. 자기 회사 멤버십 회원만 배부르면 된다는 식이다. 같은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노동자들, 다른 산업의 생존, 미래 세대의 기회는 논의 밖으로 밀려난다. 공동체는 회사 울타리 안으로 축소되고, 연대는 멤버십 소유자만의 권리가 된다.


이것을 공생의 연대라 부를 수 있을까? 이것은 잘 조직된 이익집단의 논리에 가깝다.


독일식 공동결정 모델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로봇 도입 시 전환 패키지를 함께 설계한다는 것.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도 본질적으로는 기업 내부 정규직 중심이다. 영향 평가, 재교육 설계, 단계적 퇴장 프로그램을 만드는 동안 막대한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그 비용은 결국 협력업체 단가 압박으로, 신기술 도입 지연으로, 산업 전체의 속도 저하로 이어진다. 내부의 안정을 위해 외부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다.


공화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사회적 합의의 실종이다. 누구도 공동체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무너진 자리에, 사적 거부권만 남았다. 공동체주의 관점에서 보면 연대의 자기부정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지고, 울타리 안쪽만 챙기면 된다는 계산이 들어섰다. 공리주의적으로 계산해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확실한 안정을 위해 다수의 불확실한 손실을 감수하는 구조는 총효용을 감소시킨다.


역설적이게도 노동운동은 역사적으로 약자 편에 서왔다. 부당한 권력에 맞섰고, 불평등에 저항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진입자를 차단하고, 전환을 지연시키며, 비용을 외부에 전가하는 주체가 되었다. 연대의 언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경계를 더 좁히고 있다.


이런 구조가 노동계만의 문제일까? 연대의 미명 하에 울타리를 높이는 일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의사 집단의 의대 정원 반대, 법조인의 로스쿨 증원 거부, 공무원 노조의 평가 제도 반대도 비슷한 구조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 공익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진입 장벽 유지가 아닐까? 강한 내부자들이 의사결정을 독점하며 변화를 막는 구조는 아닐까?


노동운동이 다시 사회적 신뢰를 얻으려면 기술을 막는 투쟁이 아니라 전환을 설계하는 지혜와 협력이 필요하다. 울타리를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경계를 넓히는 방식으로.


공생은 배제의 기술이 아니라 확장의 윤리이다.


우리는 지금, 공생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울타리를 관리하고 있는가? 멤버십 소유자들의 주머니를 지키기 위해 회사 경쟁력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우리는 언제까지 연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것인가? 이미 보호받는 집단이 변화의 비용을 사회 전체에 전가할 때, 그것은 권리 주장인가, 아니면 권력 행사인가?


공생은 원래 경계를 허무는 행위였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공생을 멤버십 회원들의 방패로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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