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 전문가들이 업무를 진행하며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위기관리'다. 그리고 위기관리 업무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대중과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으로 꼽힌다. 일이 실패하게 되면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라 할지라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위기의 원인이 단순 루머이거나 불순한 의도가 담긴 음해라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것으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단 1%라도 기업이 잘못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부터 PR 전문가들은 고민에 빠진다. 일단, 잘못이 확인됐으니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 포인트는 ‘사과하는 것’보다 ‘어떤 말을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지금부터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은 사례를 살펴보자.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 단체가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동시다발적으로 테러를 일으켰다. 이 테러로 미국 뉴욕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펜타곤(국방부 청사)이 불에 타 무너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사건 발생 당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위기관리에 나섰다. 이 연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지만,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 됐다. 전적으로 안보 실패를 인정한 것이 아닌 유감 표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진상조사는 하지 않고 테러세력에 대한 비난에만 몰두했다. 결국, 미 정부가 테러의 배후라는 루머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제작돼 인터넷으로 유포됐다.
이처럼 루머가 끊임없이 제기되자 유가족들은 계속해서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여론이 들끓으면서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1월 ‘9‧11 테러 진상조사 위원회’ 설립에 동의했다. 그리고 진상조사 위원회 설립 이후 2004년 3월 24일을 기점으로 미디어와 대중들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루머 생산이나 감정 낭비에 힘쓰지 않았다.
증인으로 나선 전 백악관 테러담당조정관이자 대테러 위원회 수장이었던 '리차드 클라크'가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진정 어린 사과를 전하며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장면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시는 분들과 TV를 시청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저희 정부가 국민을 실망시켜드렸습니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저희들이 실패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장난감 기업 마텔은 2007년 8월 2일부터 9월 5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무려 약 2,000만개의 장난감을 리콜했다.
처음 리콜은 8월 2일 장난감에서 기준치 이상의 납 성분이 검출되면서 시작됐다. 이 문제로 리콜한 장난감 수량이 약 100만 개였다. 두 번째 리콜은 8월 14일 자석과 장난감 본체의 접착력이 약해 아이들이 자석을 삼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전 세계 약 1,820만 개 장난감을 리콜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9월 5일 다시 납 페인트 문제로 발생했으며, 약 88만 개의 장난감이 추가 리콜됐다.
문제는 모두 중국에서 생산된 장난감이었다는 점이다. 마텔의 브랜드 이미지가 ‘중국에서 생산된 유해한 장난감을 전 세계에 판매하는 회사’로 낙인찍힐 위험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마텔은 그해 4분기 순익을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시켰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태가 발생한 뒤 CEO '로버트 에커트'는 곧장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직접 출연한 사과 동영상을 게재했다. 잘못이 밝혀졌으니 사과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후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과 동영상을 접한 미국 내 소비자 설문조사에서 제품 구매 의사 비율은 71%에서 76%로, 기업 신뢰도는 75%에서 84%로 상승한 것이다.
로버트 에커트는 영상 속에서 아래와 같이 사과했다.
"저는 네 아이의 아빠로서 부모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중략) 한 사람의 부모로서 작은 문제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고객들에게 최대한 빨리
그리고 널리 알려서 부모님들이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우리는 리처드 클라크와 로버트 에커트의 사과에서 3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① 실패를 수용하는 자세 ② 피해자와의 공감대 형성 ③ 미사여구 없는 진정성>이다.
또 사과를 표현할 때 반드시 해서는 안 되는 3가지 요소가 없다.
바로 <① 책임회피 ② 거짓말 ③ 핑계>다.
사과의 기술은 바로 진심이다
에드윈 L. 바티 스텔라 저서 ‘공개 사과의 기술’ 중